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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단에서 쟈미토프와 하만의 회담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에 시로코는 레코아와 함께 그와단으로 향하려 합니다. 사라는 시로코가 레코아만 대동하려하는데 반발하고 레코아는 어른스럽게 사라를 설득하려 하지만 레코아 역시 질투심을 부정할 수는 없어서 사라도 함께 그와단으로 향합니다. 여자의 질투심을 이용해 충성 경쟁을 벌이게 하는 시로코의 책략에 레코아와 사라가 놀아납니다. 시로코를 중심으로 시로코 - 레코아 - 크와트로 ․ 카미유, 시로코 - 사라 - 카츠의 대립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통해 시로코가 얼마나 ‘기동전사 Z건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시로코의 최후의 전용기이자 자작기 디 오가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신(神)’을 의미하는 영문 접두사 ‘theo’에서 차용한 이름입니다. ZZ건담을 비롯한 중MS의 메카닉 디자이너로 정평이 나있는 고바야시 마코토의 걸작인데 육중한 실루엣의 중MS임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버니어와 숨은 팔, 그리고 부조화의 조화라 할 수 있는 단순한 무장을 통해 건담 시리즈의 팬들에게 ‘건담 시리즈 사상 최고의 최종 보스’로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영상)으로 접하기 전이었던 1980년대 중후반에 대백과나 단행본의 설정이나 컷으로 보았을 때에는 정확히 어떤 디자인인지 정확히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었던 당시에는 MS의 디자인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프라모델을 직접 만들어 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했습니다. 하지만 디 오처럼 프라모델로 발매되지 않은 MS를 설정이나 정지된 컷으로만 보고서 실루엣을 이해하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결국 1998년 첫 번째 일본 여행 당시 뒤늦게 애니메이션으로 디 오가 움직이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정확한 실루엣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HGUC 프라모델로 발매된 현 시점에서 디 오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오카와라 쿠니오 이외에도 후지타 카즈미, 나가노 마모루, 고바야시 마코토 등 다양한 젊은 메카닉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덕분에 ‘기동전사 Z건담’(이하 ‘Z건담’)에는 건담과 자쿠의 계보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디자인의 MS와 MA들이 ‘범람’ 수준에 달할 정도로 쏟아 졌는데 앞으로 건담 시리즈에 이렇게 다양한 여러 디자이너들이 다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 2’의 시드 미드까지 영입하고 오오카와라 쿠니오, 이시가키 준야, 다카쿠라 다케시, 사쿠라 다쿠미, 마에다 마히로(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히로’를 디자인한 바 있습니다.) 등 많은 메카닉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다양한 무계보 MS들을 선보였던 ‘∀(턴에이) 건담’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기동전사 건담 시드’와 ‘기동전사 건담 시드 데스티니’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진 오오카와라 쿠니오의 1인 독점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여러 명의 다양한 메카닉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건담을 다시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쟈미토프, 하만, 시로코의 3자 회담은 ‘Z건담’이 얼마나 정치적인 작품인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미 제37화 ‘다카르의 날’에서 지구연방의회를 장악한 에우고 일파와 크와트로의 연설로 인해 정치적 성격을 노출했지만 ‘기동전사 건담’(이하 ‘퍼스트’)에서 레빌과 데긴 소드 자비가 회담을 추진하려다 기렌의 음모로 인해 전사했음을 감안하면 (당시 토미노 감독으로서는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기동전사 건담’에 ‘정치’를 삽입한다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토미노 감독은 데긴과 레빌의 회담이라는 정치적 결말보다는 음모로 인한 희생으로 회담을 백지화시키는 단순한 전개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치가 아니라 그냥 전쟁으로 단순화시킨 것입니다.) 회담을 성사시켜 정치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Z건담’의 정치성은 놀라우리만치 수준이 높습니다.

사실상 그와단에 인질로 머물렀던 크와트로는 미네바로부터 다른 전함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어내고 아가마를 무단 출격한 카츠 덕분에 탈출해 회담장을 급습해 하만과 시로코를 노립니다. 하지만 사라의 방해로 회담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 틈을 노려 시로코는 쟈미토프를 암살합니다. 시로코는 사라와 함께 그와단을 탈출하며 쟈미토프를 죽인 것은 하만이라며 복수전을 선언합니다. 바스크 일파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티탄즈의 실권을 손에 쥐며 액시즈를 공격하는 천재적인 책략가로서의 시로코를 엿볼 수 있는데 동시에 시로코가 ‘Z건담’의 최종 보스임을 선포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만과 시로코는 애기 큐베레이와 디 오를 앞세워 전투를 벌입니다. 하만은 엘메즈의 비트의 발전형 판넬로 레코아의 파라스 아테네와 사라의 보리노크 사만을 간단히 제압하고 시로코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시로코 역시 판넬의 움직임을 읽고 격추시키며 물러서지 않습니다. 하만과 시로코는 아우라를 내뿜으며 뉴타입으로서의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하려 합니다. 하만과 시로코가 아우라를 내뿜는 장면은 자칫 유치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훌륭한 작화와 연출로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사실 건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악역인 하만과 시로코가 한 작품에 등장해 뉴타입 전용 MS로 대결을 벌이는 이 장면에서 ‘퍼스트’의 뉴타입론은 사실상 완전히 부정됩니다. ‘퍼스트’에서는 아무로와 샤아, 라라 등 뉴타입들은 적이었다 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뉴타입은 적과 아군을 떠나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정립했는데 ‘Z건담’에서의 뉴타입은 하만과 시로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능력을 단지 자신의 야망을 위해 이용하려는 악인들로 다른 뉴타입과의 소통은 거부합니다. 일본의 ‘퍼스트’의 골수팬들 중에는 ‘Z건담’을 부정하는 부류도 상당한데 ‘퍼스트’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뉴타입론이 ‘Z건담’에서는 부정적이고 염세적으로 변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만과 시로코의 전투에 끼어든 카츠는 G 디펜서로 무방비 상태의 디 오를 노리지만 사라가 ‘대신맞기’(몸빵)를 하면서 전투는 종결됩니다. ‘퍼스트’의 라라와 ‘Z건담’의 마우아와 포우 이래로 지속되는 ‘대신맞기’의 전통인데 사라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 의해 죽었다는 점에서 마우아와 포우보다는 라라에 가까웠습니다. 사라를 죽이고도 카츠는 ‘사라와 노는 꿈을 꾸었다’라며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데 어리고 다혈질이라 사리분별력이 뒤떨어졌던 카츠가 사라를 죽이고 나서 받은 충격은 사실상 ‘정신붕괴’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시로코는 카츠를 죽이려 하지만 사라와 레코아 덕분에 살아남습니다만 카츠는 단지 죽음을 며칠 미루었을 뿐입니다. 카츠에게 남은 것 역시 죽음뿐입니다. 하만은 시로코와의 교전 도중 에우고와 티탄즈 양군의 대립으로 자신이 끼어들지도 않고 보리노크 사만이 격파되자 만족합니다. 3파전이라는 복잡한 구도 속에서 하만의 처신과 액시즈의 행보를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만도 그와단을 잃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덧글

  • 열혈 2006/01/05 10:56 #

    카츠는 어렸을 때는 괜찮았던 거 같은데 커서는 완전히 찌질이가 다됬더군요. 하야토와 프라우가 좋은 부모는 아니었던듯... Z를 책으로만 접하다가 애니를 보니 카미유도 만만치 않게 찌질하던데 카츠는 그 도를 넘어서더군요. Z에서 제일 맘에 안드는 캐릭인 듯한...
  • hikage7 2006/01/05 11:17 #

    시로코가 쟈미토프를 죽일 때는 뭐랄까 배신의 통쾌함?[...]
    카츠는 개인적으로 불쌍한 캐릭터 1위입니다. 죽지 않고 역샤 시대까지 살아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많이 생각해보게 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 SAGA 2006/01/05 22:52 #

    저런 카츠가 Z건담 극장판에선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묘하게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 디제 2006/01/06 00:08 #

    열혈님/ 그래도 카츠와 비슷한 세대들은 카츠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만...
    hikage7님/ 역샤아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패륜아가 둘이 되었겠죠.
    SAGA님/ 최근에 흘러나오는 토미노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Z극장판의 결말이 TV판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계란소년 2006/01/06 00:42 #

    생각해보면 이때 왜 제리드가 아니라 시로코를 데려갔는지 모를 일입니다-_-;
  • 이리 캐쉰 2006/01/06 06:12 # 삭제

    시로코에 대한 디제님의 탁견에 감탄을 멈출 길이 없군요.
    다만 사라에 대한 시로코의 진심에 있어서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한 유흥의 상대나 비서적 존재라기에는 생각 외로 사라의 자리가 컸다는 말들도 있는데 그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물론 시로코를 '카사노바' 정도로 여긴다면야 쉬운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하간 오늘도 재미있고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디제 2006/01/07 01:23 #

    계란소년님/ 정확한 앞뒤관계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시로코가 단독으로 하만과 접촉하려는 움직임에 쟈미토프가 제동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하만과 접촉했고 여기에 쟈미토프를 암살하기 위해 시로코가 끼어든 것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하만 - 시로코 - 쟈미토프의 3자 회동에서도 쟈미토프는 시로코에게 왜 콜로니 레이저를 탈취당하는데도 보고만 있었으냐고 힐난하는 장면이 나오죠. 쟈미토프가 시로코를 데려갔다기 보다 시로코가 쟈미토프와 하만의 만남에 끼어든 것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리 캐쉰님/ 시로코가 사라를 비서나 유흥의 상대로 봤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사라가 죽었을 때에만 시로코는 잠시 흥분할 뿐, 이후에는 시로코는 사라의 죽음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사라가 시로코에 감정적으로 소중한 존재였다면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겠죠. 반면 방금 포스팅한 제47화의 리뷰를 보면 카츠는 사라의 죽음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 흔들리며 사리분별력 마저 잃습니다. 시로코와 카츠가 사라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제타 2006/01/07 07:33 # 삭제

    디제님 글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사라와 시로코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라가 시로코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 인물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로코라는 인물에게 있어 타인이라는 것은 인간적으로 그리 중요한 비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인간적인 부분이 시로코에게는 무척 희박하게 느껴집니다. 타인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타인의 존재 자체도 모두 자신이 구상한 이상의 틀 안에서만 받아들이는 것도 같고요. 뭔가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로코에게는.
  • 디제 2006/01/08 03:13 #

    제타님/ 'Z건담'의 초기안을 보면 토미노 감독은 시로코를 인조인간으로 설정했는데 비록 그 설정이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시로코야말로 'Z건담'의 캐릭터 중 가장 냉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로코와 비교하자면 하만과 크와트로조차 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긴 최종화를 보면 극장에서 시로코가 그와트로에게 '나는 샤아보다 냉정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죠. 그만큼 시로코는 인간미가 결여된 캐릭터입니다. 최종보스다운 순수악의 결정체이기도 하고요.
  • 달무리 2006/02/03 20:47 # 삭제

    ''Z건담’을 부정하는 부류도 상당한데 ‘퍼스트’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뉴타입론이 ‘Z건담’에서는 부정적이고 염세적으로 변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공감을 해버렸습니다.국내에서는 퍼스트와 제타팬이 그렇게 딱 갈려 있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니다만 저는 제타도 좋아하지만 역시 저런 이유때문에 제타를 1위로 뽑아줄 수가 없더군요.역샤도 오로라부분은 언제봐도 감동적이지만,초반 라라아가 꿈에 등장하는 건,뉴타입의 이해가 시간이 지나면 뒤틀어진다는 것 같아서 참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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