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레오 타입의 형사 인 스푸너 역을 담당했던 윌 스미스는 1990년대말 두 번이나 지구를 구하며 블록 버스터 배우로 자리 잡았습니다만('맨 인 블랙', '인디펜던스 데이')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 방황하더니(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입니다만 마이클 만의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는 것이 배우의 캐리어에는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만의 영화는 다들 좀 지루한 편이고 '알리'에 등장한 이후 윌 스미스는 더더욱 주가가 떨어졌으니까요.) '아이, 로봇'까지 왔습니다. 하긴 '맨 인 블랙'과 '인디펜던스 데이'도 모두 SF 영화였지만 그래도 '맨 인 블랙'에는 타미 리 존스도 있었고 '인디펜던스 데이'에는 빌 풀먼이나 제프 골드블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 로봇'에서는 혼자 스토리를 이끌어야만 했던 것이 아무래도 좀 버거워 보입니다. 연기력의 부재라기 보다는 스테레오 타입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회색 빛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았던 것이며(더 길게 거슬러 올라간다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도 있겠군요.), 기계와 인간의 대립은 '터미네이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며 감정을 가진 기계는 'A.I.'에서, 몸을 기계로 바꾼 경찰은 '로보캅'에서 본 것들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스푸너의 기계팔이 드러날 때, '아니, 스푸너도 로봇이었군' 하며 창피하게도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며 오버했습니다.)
하지만 '아이, 로봇'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호감이 가는 영화였습니다. 최근 헐리우드에서는 SF 영화 제작을 꺼리는 분위기라 SF 영화가 흔치 않습니다. SF 팬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죠. '반지의 제왕'이나 '스파이더맨'의 성공 이후 영화사들은 확실한 흥행이 보장되는 원작이 잘 알려진 영화만을 제작하려 하니까요. '아이, 로봇'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참고했지만 원작을 그대로 각색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반지의 제왕'으로 잘 알려진 웨타가 참여한 CG나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이 매우 볼만합니다. 특히 주역 로봇인 NS-5의 얼굴에 표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디자인이나 움직임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제대로 된 피겨가 나오면 하나 소장하고 싶군요.
스푸너와 함께 행동하는 로봇 심리학 박사인 수잔 캘빈으로 등장하는 브리짓 모나한은 70년생으로 좀 나이가 많은 편인데, '세렌디피티'에도 등장했다는데 어디에 나왔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군요. 사실 최근의 헐리우드 영화에서 여배우들의 몸매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킹 아더'에서는 키라 나이틀리의 몸매를 수정한 포스터나 나올 정도인데 브리짓 모나한의 경우 지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상체의 몸매를 강조하기 위한 패드 같은 것 조차 사용하지 않았더군요. 이제 패드는 헐리우드 영화 뿐만 아니라 한국 여성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는데 '아이, 로봇'에서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리고 자살한 래닝 박사로 등장한 제임스 크롬웰은 'LA 컨피덴셜'에서 더들리 경감으로 출연한 바 있습니다.
감독인 알렉스 프로야스는 '크로우'와 '다크 시티'를 제작한 바 있는 이집트 출신의 감독입니다. '크로우'와 '다크 시티' 모두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였는데 '아이, 로봇'은 윌 스미스 덕분인지 그다지 어두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다크 시티'는 특히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만 보신 분들 중에서는 호평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아이, 로봇'은 자본이 좀 더 들어가서인지 관습적으로 흘러가서 좀 아쉽습니다.
끝으로 헐리우드 영화치고는 노골적으로 PPL이 등장합니다. 아우디, 컨버스, JVC, 페덱스 등이 등장하는데 다소 짜증나셨던 분들도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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