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비긴즈 - 초호화 캐스팅의 짜릿한 블록버스터
성폭행당한 아내의 죽음 이후 새로운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킬 수 없는 레너드(가이 피어스 분)는 아내의 살인범을 찾아 복수하려 합니다. 레너드를 돕는 테디(조 판톨리아노 분)는 레너드에게 접근하는 나탈리(캐리 앤 모스 분)를 멀리하라고 합니다. 기억하기 위해 몸 곳곳에 문신을 새기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메모하는 레너드는 테디와 나탈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합니다.
‘배트맨 비긴즈’로 당당히 주류 상업 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두 번째 작품 ‘메멘토’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Memento Mori’에서 착안한 제목처럼 아내의 죽음 이후 범인 존 G를 찾아 복수하는 사내 레너드를 중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건을 역순행적으로 재배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극장을 찾았던 2001년 개봉 당시 화면을 거꾸로 돌리는 오프닝에서 레너드의 손으로 총이 떠올라 잡히는 장면에서 ‘어, 이 영화 '매트릭스' 같은 액션 영화인가?’하는 착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레너드가 모텔 방안에서 문신을 새기고 전화를 받는 영화 속 사건들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흑백 화면을 비롯해 보험 조사원 주인공과 부패한 경찰, 주인공을 범죄로 내모는 팜므 파탈의 등장인물 구도는 필름 느와르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진실을 찾아 헤맨다는 점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비롯한 과거의 필름 느와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메멘토’가 히치콕 스타일의 필름 느와르를 일방적으로 추종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영화들에서 묘사되었던 기억 상실증과 달리 ‘메멘토’의 단기 기억 상실증은 새로운 정보들도 끊임없이 왜곡되어 새롭게 기억에 남아 주인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든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이전까지 관객이 수용했던 정보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종반의 반전은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메멘토’는 종반부 이전까지 별다른 암시와 복선이 없다가 막판에 뒤집어 버리는 수법을 취한 것은 아닙니다. ‘유주얼 세스펙트’의 고바야시와 ‘식스 센스’의 말콤(브루스 윌리스 분)의 실체는 종반부에 갑자기 밝혀지지만 ‘메멘토’의 레너드의 실체는 중간중간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와 순간적으로 겹쳐지는 그의 거짓된 자아 새미의 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암시됩니다. 관객들은 종반부 이전에 이미 레너드가 잘못된 기억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암시 없이 종반의 얄팍한 반전으로 관객을 속이는 ‘쏘우’같은 영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극장에서 처음 보았던 당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과 정교한 퍼즐을 맞추는 듯한 지적 쾌감에 흥분하며 극장을 나섰지만 몇 차례 반복감상하며 영화의 모든 내용을 이해한 이후에는 도리어 무거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메멘토’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엉뚱한 행동을 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레너드 덕분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정보의 범람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채 거짓된 기억을 끊임없이 주입당하는 현대인의 삶이 레너드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레너드처럼 조작되는 기억을 강요당해 주체적 의식 없이 타인에게 이용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기억하는 과거의 추억들이 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름답게 윤색되고 덧씌워진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기에 ‘메멘토’는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LA 컨피덴셜’ 이후 주목받았던 호주 출신의 가이 피어스가 ‘메멘토’를 비롯해 블록버스터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출연작들을 쌓아가며 소모되지 않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과작에 가까워 자주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깡마른 몸매에 근육만을 남긴 ‘메멘토’에서의 호연은 그의 대표작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매트릭스'에서는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던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와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는 사이퍼 역의 조 판톨리아노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뒤바꾼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어떻게 보면 세속적이고 부패한 캐릭터로서의 조 판톨리아노는 두 작품에서 동일한 이미지이지만 구원의 여신이었던 '매트릭스'에서와는 달리 교활한 팜므 파탈로 변신한 캐리 앤 모스는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메멘토’를 처음 보고 감격해서 구입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지난 2월 이사오면서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몸에 문신이라도 새겨서 기억했어야 하나 봅니다.

‘배트맨 비긴즈’로 당당히 주류 상업 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두 번째 작품 ‘메멘토’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Memento Mori’에서 착안한 제목처럼 아내의 죽음 이후 범인 존 G를 찾아 복수하는 사내 레너드를 중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건을 역순행적으로 재배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극장을 찾았던 2001년 개봉 당시 화면을 거꾸로 돌리는 오프닝에서 레너드의 손으로 총이 떠올라 잡히는 장면에서 ‘어, 이 영화 '매트릭스' 같은 액션 영화인가?’하는 착각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레너드가 모텔 방안에서 문신을 새기고 전화를 받는 영화 속 사건들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흑백 화면을 비롯해 보험 조사원 주인공과 부패한 경찰, 주인공을 범죄로 내모는 팜므 파탈의 등장인물 구도는 필름 느와르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진실을 찾아 헤맨다는 점은 히치콕의 ‘현기증’을 비롯한 과거의 필름 느와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메멘토’가 히치콕 스타일의 필름 느와르를 일방적으로 추종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영화들에서 묘사되었던 기억 상실증과 달리 ‘메멘토’의 단기 기억 상실증은 새로운 정보들도 끊임없이 왜곡되어 새롭게 기억에 남아 주인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끈다든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이전까지 관객이 수용했던 정보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종반의 반전은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메멘토’는 종반부 이전까지 별다른 암시와 복선이 없다가 막판에 뒤집어 버리는 수법을 취한 것은 아닙니다. ‘유주얼 세스펙트’의 고바야시와 ‘식스 센스’의 말콤(브루스 윌리스 분)의 실체는 종반부에 갑자기 밝혀지지만 ‘메멘토’의 레너드의 실체는 중간중간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와 순간적으로 겹쳐지는 그의 거짓된 자아 새미의 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암시됩니다. 관객들은 종반부 이전에 이미 레너드가 잘못된 기억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암시 없이 종반의 얄팍한 반전으로 관객을 속이는 ‘쏘우’같은 영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극장에서 처음 보았던 당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과 정교한 퍼즐을 맞추는 듯한 지적 쾌감에 흥분하며 극장을 나섰지만 몇 차례 반복감상하며 영화의 모든 내용을 이해한 이후에는 도리어 무거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메멘토’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엉뚱한 행동을 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레너드 덕분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정보의 범람 속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채 거짓된 기억을 끊임없이 주입당하는 현대인의 삶이 레너드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레너드처럼 조작되는 기억을 강요당해 주체적 의식 없이 타인에게 이용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기억하는 과거의 추억들이 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름답게 윤색되고 덧씌워진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기에 ‘메멘토’는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LA 컨피덴셜’ 이후 주목받았던 호주 출신의 가이 피어스가 ‘메멘토’를 비롯해 블록버스터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독특한 출연작들을 쌓아가며 소모되지 않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과작에 가까워 자주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깡마른 몸매에 근육만을 남긴 ‘메멘토’에서의 호연은 그의 대표작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매트릭스'에서는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던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와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는 사이퍼 역의 조 판톨리아노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뒤바꾼 점도 특기할 만합니다. 어떻게 보면 세속적이고 부패한 캐릭터로서의 조 판톨리아노는 두 작품에서 동일한 이미지이지만 구원의 여신이었던 '매트릭스'에서와는 달리 교활한 팜므 파탈로 변신한 캐리 앤 모스는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메멘토’를 처음 보고 감격해서 구입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지난 2월 이사오면서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몸에 문신이라도 새겨서 기억했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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