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 뺨 때리는 힘이 약한 멜러

농촌의 목장에서 일하는 순진한 노총각 석중(황정민 분)은 다방에서 일하는 은하(전도연 분)에게 반해 대쉬합니다. 처음에는 석중의 진심을 믿지 않던 은하였지만 그의 우직한 사랑에 감화되어 결국 결혼에 골인합니다. 하지만 과거가 복잡했던 은하가 평범한 농촌 가정의 며느리가 되기는 쉽지 않은 법,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됩니다.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은 노인의 사랑을 묘사한 데뷔작으로 영등위와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죽어도 좋아’와 같이 사회적 통념과 편견을 뛰어 넘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죽어도 좋아’라는 황정민의 대사도 있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업소 여성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너는 내 운명’은 현실적인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는 일반적인 멜러 영화들과 달리 2001년 이후의 몇 가지 시대 상황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합니다. 2001년 9월에 개봉된 영화 ‘봄날은 간다’(명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도 영화 속에서 인용됩니다.)나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승리 등의 실제 사건을 영화에 포함시켜 실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골든 골을 넣은 안정환이 환호하는 이탈리아 전 승리 화면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독일과의 준결승전 화면을 삽입한 것은 옥의 티입니다.

15kg을 불린 황정민이 순박한 사랑을 선보이는 중반부까지는 마치 로맨틱 코미디처럼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감동과 눈물을 자아내야하는 중반부 이후에는 아쉽게도 힘이 떨어집니다. 최근에는 최루성 멜러 영화가 적었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울고 싶으니 뺨 때려 달라’는 의도로 극장을 찾았겠지만 뺨을 때리는 힘이 의외로 약합니다. 기왕 통속 멜러를 표방한 이상 유치하도록 화끈하게 밀어붙여 눈물을 왈칵 쏟아내게 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편지’나 ‘약속’과 같이 눈물을 줄줄 흘러내리게 하기에는 다소 점잖습니다. 예고편에서도 공개된 면회 장면을 제외하고는 최루성 장면이 적어 아쉬웠습니다. 따라서 대박 흥행은 어렵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하지만 에이즈는 악수한다고 해도 옮지 않고 감염된다 해도 즉사하는 것이 아닌 이상(‘E.R’에서도 에이즈에 걸린 지니 불릿(글로리아 루벤 분)이 힘겹지만 그런대로 일상을 이끌어가죠.) 그런 편견에 맞서는 희망 섞인 결말은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결말이 눈물의 양을 감소시키는 면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달콤한 내 인생’ 이후 주가가 오른 황정민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습니다. 악독한 조폭에서 순박한 농촌 총각으로의 연기 폭은 놀랍습니다. 특히 한 영화 속에서 15kg를 찌웠다가 다시 15kg를 빼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조심스럽게 황정민이 대형 배우로 성장할 가능성을 점쳐봅니다. ‘인어공주’의 실패 이후 절치부심한 전도연은 이제 서서히 나이 먹어가는 것이 눈에 띄긴 하지만 여배우로서 CF 출연 등이 끊길 수 있는 에이즈 걸린 업소 여성을 연기했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곧 드라마에 출연하는데 가급적 스크린에서만 그녀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연들로는 나문희, ‘친절한 금자씨’의 마녀 역의 고수희, 김부선 등도 눈에 띕니다.

by 디제 | 2005/09/19 19:08 | 영화 | 트랙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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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늘 갈림길, 한 걸음 더 at 2005/09/19 19:29

제목 : [리뷰] 너는내운명 (You're My Sunshi..
지고지순한 사랑. 이처럼 진부한 테마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그처럼 사람들 마음 깊이 간직되고 반복되는 테마가 또 있을까요. 지고지순한 사랑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장벽이 필요합니다. 그 장벽은 높고 튼튼할수록 좋지요. 우리에게 있어 <춘향전>, 그리고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런 테마를 극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이야기'지요. 게다가 그것이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두배가 되겠지요.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한 남자가 한......more

Tracked from 마른미역군의 일탈. at 2005/09/20 11:20

제목 : 너는 내 운명
어머나. 몰랐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더군요. 영화에 대해서 조금의 사전 정보도 없이 제목만 보고 영화를 봤답니다. 마침 시간이 맞는게 '너는 내 운명'이랑 '가문의 위기' 뿐이었는데, 차마 '가문의 위기'는 보기가 싫더라구요. 사실 전도연씨를 싫어합니다. (그 왜 주는 것 없이 괜히 싫은거 있잖아요;) 그래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후로 전도연씨가 출연한 영화는 한편도 보지않았어요; 사실은 이번에도 주연이 전도연씨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안봤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보고나니 전도연씨가 좋아지더군......more

Commented by emailer at 2005/09/20 07:30
Commented by 프쉬케 at 2005/09/20 09:43
저도 영화보면서 그 월드컵 옥의티 발견했었어요 ㅎㅎ
금자씨는 안봤지만 고수희씨는 그 다방주인여자를 말하는거같네요 맞죠?
Commented by 여왕님♡ at 2005/09/20 14:25
월드컵 옥의 티가 있었군요; 보면서 발견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Commented by divoire at 2005/09/20 15:26
시간차 옥에티라니..^^ 재밌군요..
Commented by 디제 at 2005/09/21 15:49
emailer님/ 좋은 기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프쉬케님/ 예, 맞습니다.
여왕님♡님, devoire님/ 월드컵 옥의 티는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월드컵의 흥분을 강조하기 위해 집어 넣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AGA at 2005/10/01 00:46
오늘 봤는데 꽤나 뒷끝이 씁쓸하더군요. 특히 석중이 나간 뒤 '소금 뿌려!'라고 말하는 마을 주민을 보니까 그냥 한대 치고 싶어지더군요. ㅡㅡ;;;
Commented by 디제 at 2005/10/01 01:05
SAGA님/ 그런데 그 소금 뿌리는 마을 주민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겁니다. --;;;
Commented by 마리 at 2005/10/04 13:14
막 울고 싶어서 보러갈까 했는데 남편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답니다. 혼자 영화 보는걸 싫어하진 않지만 이런 영화를 혼자 보고 울면서 나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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