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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 범인 없는 걸작 토종 스릴러 영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부녀자 강간 연쇄 살인 사건을 담당한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은 서울에서 내려온 형사 서태윤(김상경 분)과 함께 수사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물증도 잡지 못한 채 사건은 연이어 터지고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미궁으로 빠져 듭니다.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구 미제 사건인 화성군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연극 ‘날 보러 와요’를 영화화한 ‘살인의 추억’은 500만이라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을 스릴러라고 한다면 이만큼 성공한 한국 스릴러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헐리우드 영화의 정교하고 치밀한 공식과 장르성에 충실한 스릴러와 동일시해서는 안됩니다. 우선 ‘살인의 추억’은 범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맥거핀에 불과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잊었지만 화성군 연쇄 살인 사건이 영구 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용의자 박현규(박해일 분)가 과연 진범이냐 아니냐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차라리 그보다는 캐릭터가 극과 극인 박두만과 서태윤이 치고 받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버디 무비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살인 사건에 따라 피폐해져가는 형사들의 심리 묘사입니다. 육감에 의존하는 시골 형사 박두만은 시간이 흐를수록 냉정해지며, ‘서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과학적 수사를 중시하는 서태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갑니다. 군화발로 용의자들을 마구 구타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연민이 느껴지는 조용구(김뢰하 분)는 다리를 잘라야 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세 등장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명장면들은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까지 감각적인 즉흥 연기가 돋보인 송강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빗 속 결투 시퀀스에 비견될 만한 철도 터널 장면에서 울먹이며 총을 난사하는 김상경, 다리 절단을 위해 수술대에 누운 채 허무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김뢰하에 이르기까지 세 배우의 고뇌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좌절감을 선사합니다. 이에 맞추어 ‘살인의 추억’에서는 해가 떠오르는 맑은 날을 비추는 장면이 오프닝과 엔딩을 제외하면 거의 없이 내내 흐리거나 비가 내립니다.

세 배우를 뒷받침하는 조연들의 연기 또한 놀랍습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구 형사 반장 변희봉, 리얼한 경상도 사투리의 신 형사 반장 송재호, 등장 장면마다 관객을 갑갑하게 만드는 백광호 역의 박노식, 평범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진 박현규 역의 박해일까지 대단히 탄탄합니다. 특히 원 컷 원 씬의 롱테이크로 ‘살인의 추억’ 최고의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피해자 발생과 발자국을 묘사하는 논 장면에서의 변희봉의 연기는 단연 최고입니다.

일본 시사회 당시 어떤 일본인 평론가가 ‘형사물’이라는 것 이외에는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게 되어 ‘춤추는 대수사선’ 쯤의 가벼운 영화를 예상했다가 경탄하고 말았다는 걸작 ‘살인의 추억’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밀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색깔이 완벽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강에서 튀어나온 괴물에 온 가족이 맞서 싸우는 내용으로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변희봉 등을 다시 캐스팅했으며 ‘반지의 제왕’의 웨타에 CG를 맡긴 ‘괴물’은 ‘슈퍼맨 리턴즈’와 함께 2006년 최고의 기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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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치즈 2005/09/18 19:57 #

    으으음...점점 박두만과 서태윤의 성격이 변해가는 장면들은 참 섬뜩하기도 했었어요
  • 강마 2005/09/18 20:18 #

    정말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는데,소름돋았습니다.마지막 박태일과 김상경의 터널앞 격투씬은 미장센적으로도 멋졌습니다.좋더군요~
  • 이준 2005/09/18 20:45 # 삭제

    1. 기본 베이스가 80년대의 암울성을 깔고 있다고나 할까요? 아니 노골적인 80년대까기가 아니라 은근한 페이소스로 깔면서 추억이나 당대의 암울성을 배경으로 하는 점에서는 최고작이었습니다. CF로 재탕까지 된 수사반장 이야기가 "문귀동"에 대한 언급이 뭐 그런거죠 ^^

    2. 의외로 변희봉씨의 연기가 기대 이상이더군요. 80년대 조선왕조 5백년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거리였습니다만 (의외로 중견텔런트 분들이 이런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시더군요)

    PS: 화성 사건 자체는 여러 한국 추리 단편에서 정형화된 소재입니다. 그중에는 걸작부터 태작까지 다양한데. 개인적으로는 살인의 추억 이 작품만한 건 없다고 봅니다.
  • SAGA 2005/09/18 21:32 #

    마지막에 송강호가 박해일의 눈을 쳐다보면서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 죄다 2005/09/18 21:42 #

    저도 이 영화는 한국 영화 베스트로 칩니다. 정말 한국영화인가 할 정도로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 디제 2005/09/18 23:40 #

    치즈님/ 동감입니다. 영화가 사람의 심리 변화를 제대로만 그려낼 수 있다면 대성공이죠.
    강마님/ 정말, 압도적이다, 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걸작이죠.
    이준님/ 80년대에 대한 페이소스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도 그렇죠.
    SAGA님/ 그 장면에서 송강호 특유의 연기가 빛났죠.
    죄다님/ 사실 이 작품보다 관객 동원에 앞섰던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보다 훨씬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이죠.
  • 퍼플 2005/09/21 10:15 #

    가장 좋아하는 영화랍니다. 갠적으로 주는 별점 다섯개인 단 하나의 영화. ^^
  • 디제 2005/09/21 15:48 #

    퍼플님/ 사실 따지고 보면 내러티브는 의외로 허점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그걸 압도할 만한 힘이 있는 영화였죠.
  • 준군 2005/09/25 02:05 # 삭제

    CG업체가 오퍼너지로 바뀌었습니다. 웨타하고는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하더군요. 오퍼너지도 필모그래피를 보면 멋집니다. 투모로우, 신시티, 헬보이.. 한국에서 참여하는 인사이트 비주얼에서는 아마 전체적인 색상을 맡을 것이고, 오퍼너지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괴물을 맡을 것으로 보이네요.
  • 준군 2005/09/25 02:07 # 삭제

    이건 제 생각인데 말이죠. 영화의 배경이 한강 둔치의 매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요.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찍은 옴니버스 기획 '이공' 의 단편영화에서도 변희봉님이 주연으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도 배경이 한강 둔치의 매점이란 거지요. 아마 그 곳이 촬영장소가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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