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 1000만 관객의 과대 평가

영화는 상업 예술이고 흥행하지 못하면 감독과 배우, 스탭은 생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데뷔작 잘 찍어 놓고 소포모어 징크스로 무너져간 한국 영화 감독은 너무나 흔하고 한때 한국 영화계를 혼자 이끌다시피했던 한석규나 유오성의 몰락을 보면 연속 흥행은 비록 어렵지만 감독이나 배우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년 수입이 몇백에 불과하다는 현장 스탭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따라서 영화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관객은 돈과 직결됩니다. 시네마 서비스를 이끄는 강우석은 그런 면에서 다소 거만하지만 돈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감독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들어온 관객은 영화 자체를 제대로 평가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1000만 관객의 대기록을 처음 세운 '실미도'가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면 따라서 보는 우리나라 관객의 특성 덕분에 대박이 터졌지만 막상 걸작이라고 보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결말을 알고 들어가서 보는 영화이니만큼 서사구조가 탄탄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스케일이 큰 작품도 아닙니다. 물론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설원 폭파신이나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된 세트까지 뜯어보면 돈들어간 곳은 많습니다만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만큼 전투신이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아니죠. 음악도 '더 락'을 노골적으로 차용한 스타일이고요. 포스터는 21세기의 영화답지 않게 촌티가 완연했습니다.

'실미도'가 극장에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은 한국 특유의 남이 보면 나도 본다는 정서를 이용해 중장년 관객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 것이라 생각됩니다. 거칠었던 군대 생활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던 박정희 군사 정권에 대한 혐오감이 맞물려 눈물샘을 자극하는 실미도 훈련병들의 동료애가 바로 그것이겠지요.

하지만 뻔한 드라마를 돋보이게 만든 캐릭터를 살린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조직 폭력배가 되어 범죄를 저지른 후 사형을 선고받고 실미도에 온 강인찬 역의 설경구는 취직이 안되어 어렵게 살았다는 설정에 비해 귀티가 나는 것이 흠이었습니다만 폭발적인 연기력만큼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허탈한 웃음이 돋보이는 정재영을 보니 '아는 여자'를 놓친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몇편의 상업 영화에서 쓴잔을 맛보았던 임원희의 코믹 연기는 감초처럼 빛났고 언제나 든든한 안성기나 후반부에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한 허준호도 작품의 축을 잘 잡아주더군요.

'실미도'는 전국 300만 정도만 들어왔어도 정당한 평가를 받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1000만이라는 말도 안되는 관객에 어이 없어 했고, 조선일보는 국가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는 영화라며 불순한 이데올로기의 발톱을 또 드러냈으며,극중에 등장한 '적기가' 때문에 극우단체가 소송을 거는 등 관객 외에는 주변에서 많이 괴롭힌 영화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1000만 아닙니까? 1000만. 그러니 강우석이 늘 기고만장한 것이겠죠.

by 디제 | 2004/07/18 22:27 | 영화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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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um2 at 2004/07/19 00:35
저 이거 아직 안 봤답니다. 전 성격이 요상해서 천만!이라고 떠들어대니까 보기가 싫어지더라구요. 그러니 '못' 봤다기보다 '안'봤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네요. 그래도 보긴 봐야겠죠?^^;
Commented by 디제 at 2004/07/19 00:41
음, 저도 그래서 극장에서는 안봤습니다. 이상하게 남들 다 보는 영화 중에 굳이 극장에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있더군요. Yum2님께서도 의무감으로 보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은데요. ^^
Commented by dony at 2004/07/22 01:53
저도 실미도 극장서 보고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내용도 대충 알고..사람들의 대중심리에 휩쓸리기 싫은 면도 있었고..솔직히 1000만이라는 명성과는 달리..분명 재미가 없었을꺼라 생각했죠..그런데..이 영화 나중에 보고..극장서 안본거 후회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Commented by goodvibe at 2004/07/26 14:04
이 영화가 성공한 건 실미도 사건이라는 실화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매력적인 소재를 너무나 투박하게 만들어 버려서 적지 않게 실망했었습니다.
Commented by 재롱바라기 at 2004/11/30 10:59
으음.. 시끄러웠어요..처음부터 끝까지..;;
Commented by rkt at 2008/06/20 16:41
곧잘 만들어진 영화에는 틀림없지만 1000만은 오바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역시 생각은 거의 같군요.이외에도 괴물이나 디워,왕의남자등도 잘만들어진것은 사실이지만 흥행성적은 그것을 훨씬 초월하게 나온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아무래도 한국사람들에게는 한국영화가 보기가 편해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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