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라 - 장진 식 퓨전 스릴러

아는 여자 - 장진의 한계?

33세의 카피라이터 정유정의 살해 현장에서 잡힌 용의자 김영훈(신하균 분)은 자신이 살인을 기도했지만 정작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살인 사건 수사를 생중계하는 쇼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건 담당 검사 최연기(차승원 분)는 다양한 증인들의 증언을 듣게 됩니다.

최근 흥행 순항중인 ‘웰컴 투 동막골’의 원작을 쓴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1980년 10월 21일 방영된 차범석 극본의 드라마 ‘전원일기’의 제1회의 제목을 차용한 퓨전 스릴러입니다. ‘기막힌 사내들’에서 작년에 개봉된 ‘아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4편의 영화를 감독했던 장진에 대해 ‘끼는 많은데 산만하다’, ‘중간까지는 재미있었는데 결말이 싱겁다’는 식의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즉, 다재다능하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식의 평가가 주류였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도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뒤섞어 놓았습니다. 신구, 정동환, 김진태, 박정아, 이한위 등 많은 조연급 연기자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 신하균을 주연이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입니다. 주인공 차승원이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고도 스토리가 굴러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둘을 범인과 형사로 처음에 설정한 것치고는 비중이 약한 편입니다. 등장 인물이 많은 만큼 스토리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튑니다. 마약상 꾸러기로 분한 정재영이 등장하는 장면은 재미는 있지만 내러티브 상으로는 무의미한 부분입니다. 디지털 시계의 시보에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며 스튜디오처럼 이루어진 건물에서 수사를 하는 것은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드라마 ‘24’를 연상케 하며 이외에도 MBC 100분 토론,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각 방송사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부분도 눈에 띕니다. 수사를 생중계하는 방송사 측은 전대미문의 시청률에 집착하여 굿판까지 벌립니다. 살인 사건마저도 상업주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피의자를 감시하는 경찰은 그와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아마도 싸이를 빗대는 것으로 보입니다.)에 올리려 합니다. 신생아를 학대한 사진을 싸이에 자랑삼아 올린 간호조무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대중 매체와 인터넷의 천박성에 대한 장진의 냉소적인 시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퓨전 스릴러라는 장르로 규정한 바와 같이 산만하게 흘러가던 내러티브는 굿판을 계기로 관객을 집중시키며 살인범 색출이라는 스릴러의 정통적인 결말을 향해 전진합니다. 스릴러의 공식인 반전도 비교적 훌륭합니다. 장진 식 코미디나 그동안 벌려놓은 판을 정리하지 못하는 산만함은 ‘박수칠 때 떠나라’의 결말 부분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최종적으로 진범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합리적인 추리보다는 온정주의적인 결말에 치우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애잔함과 여운이 남는 결말이었습니다. 박진감 넘치면서도 서정적인 OST도 이런 장점들을 훌륭히 뒷받침합니다.

굳이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극장 측에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녹음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사가 웅웅거리더군요. 그리고 확실하게 웃기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벌어진 후 조금 생각하게 하며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장진식 유머가 뒤섞인, 중반부까지는 불친절한 스릴러이니 입소문이 좋지 않을 듯 합니다. 아무래도 장진 감독은 수작을 극장에 걸어 놓고도 자신의 원작을 박광현 감독에게 넘긴 ‘웰컴 투 동막골’에 흥행에 밀리는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될 것 같습니다.

by 디제 | 2005/08/14 04:26 | 영화 | 트랙백(4)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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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Sion, In The.. at 2005/08/14 14:42

제목 : 박수칠 때 떠나라
* 언제나 그렇듯 네타(스포일러)는 신경 안쓰니 주의해 주시는 센스-_-)b 오늘 집 근처 프리머스에서 가족들과 봤는데...... 요즘 유행입니까?;; 왠지 이것도 생각과는 미묘하게 다른 애매한 영화네요_no 처음 예고편을 보고 한 생각은 역시 그거였습니다. '살인에 관한 화려한 수사', '이제까지의 스타일은 잊어라! 지금부턴 수사도 생중계된다' 라는 카피와 쇼처럼 리얼타임 전국 생방송되는 살인수사라는 설정이 이제는 정보전달이 아니라 살인교사가 되어버린 언론에 대한 비웃음으로 가득찬 영화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이권에......more

Tracked from 늘 갈림길, 한 걸음 더 at 2005/08/14 16:55

제목 : [리뷰] 박수칠 때 떠나라
여름 휴가철의 기대작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습니다. 마지막 주자는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였습니다. 이 영화의 메인 카피를 보면, "살인에 관한 가장 화려한 수사"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이 영화의 시작은 한 '카피라이터'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영화의 '카피'를 주의해서 보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 영화의 메인 카피는 "살인에 관한 가장 화려한 搜査"였을까요, 아니면 "살인에 관한 가장 화려한 修辭"였을까요. 유력한 용의자 김영훈(신하균 분)은 현장에서 검거됩니다. 이 장면, "지구를 지켜라"의 장면과 ......more

Tracked from lunamoth 3rd at 2005/08/15 05:05

제목 : 박수칠 때 떠나라 (2005)
2005.08.11 개봉 / 15세 이상 / 115분 / 미스터리,드라마,코미디 / 한국 / 국내 / 씨네서울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장진 감독의 전작 를 생각하고 예의 유쾌한 코미디를 기대했습니다만, 영화는 예상외로 정극의 수순을 따라갑니다. 물론 간간히 삽입되는 웃음의 코드는 여전합니다. 미모의 카피라이터가 호텔 방에서 살해를 당합니다. 그리고 20분후 도착한 경찰. 수사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 허나 말끔하게 차려진 "합동수사본부"는 뭔가 이상한 느낌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세트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을......more

Tracked from 허니와 클로버 at 2005/09/03 17:17

제목 : [2005.08.30] 박수칠 때 떠나라 ★★★
[총평] 전반적으로 흥미진진한 범죄수사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알고보면 공포영화. [감상] 아름답고 능력있는 카피라이터가 호텔에서 살해당한다. 곧 잡힌 강력한 용의자 신하균. 모든 수사과정은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시청률은 80%(70%던가? -_-;)에 육박한다... 전반부는 신하균과 차승원의 강렬한 1:1 대결구도로, 두 사람의 연기는 강렬하다. 하지만, 뭔가 영화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진 감독의 역량이 딸렸나? -_-;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점점 여러 명의 용의자가 나타나고 수사는 복잡해진......more

Commented by FAZZ at 2005/08/14 11:16
영화제목이 전원일기1화의 제목이었군요.
Commented by Sion at 2005/08/14 14:42
아! 그게 전원일기의 그것이었죠>_< 원래 장진이 그런 평가가 주인 감독이었군요;; 그렇다면 납득_no
Commented by 디제 at 2005/08/15 01:27
FAZZ님, Sion님/ 장진이 확실히 영화 제목은 잘 짓습니다.
Commented by 실험용생쥐 at 2005/08/15 20:51
관련글 남기고 가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디제 at 2005/08/16 01:40
실험용생쥐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FreeMaker at 2005/08/17 23:01
트랙백 보고 찾아왔습니다. 글을 읽자니 제 글실력이 초라해보이는군요-_-;;
Commented by 디제 at 2005/08/18 00:18
FreeMaker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별 말씀을요... --;;;
Commented by 아이시호 at 2005/08/18 03:27
안녕하세요, 관련글 남기신 것 보고 놀러왔습니다^^
맞아요, 대사전달이 안돼서 짜증내면서 본 기억이 났습니다. 사운드 조절에 실패를 한 걸까요? 배경음이 없는 장면에서도 웅웅거려서 중요한 대사도 못 듣고 그랬는데...
인사드리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제 이글루에도 다시 놀러와 주세요^^
Commented by 디제 at 2005/08/19 01:10
아이시호님/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Eskimo女 at 2005/08/24 16:25
덧글에 웃었어요 "확실히 영화 제목은 잘 짓습니다."에서..ㅋ 진짜 잘 짓는 듯! 웰컴투 동막골이 그나마 제일 평범한 축에 속하는 듯해요 ㅎㅎ
Commented by 디제 at 2005/08/25 13:43
Eskimo女님/ 장진은 순발력이나 재치가 번뜩인다는 측면에서는 최고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스케일이나 힘이 좀 달린다는 느낌이 있어요.
Commented by 퍼플 at 2005/08/31 13:54
한국영화의 단점이지요, 자막이 없다는 것. ^^;
대사가 잘 안들리는 경우가 많아서 눈치로 때려잡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Commented by 디제 at 2005/08/31 16:06
퍼플님/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 오히려 신경을 귀에 집중해야 해서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Commented by Bane at 2005/09/04 01:24
사운드 문제는 공통적인거 같네요. 저도 어제 봤는데, 고음이 갈라지고 목소리가 붕붕거리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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