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되었습니다. 기대작이었던 탓에 평일임에도 자정이 넘은 심야까지 매진되었습니다. 흥행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친질한 금자씨’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매우 다른 작품입니다. 전반부까지는 대단히 코믹하며 만화적으로 전개됩니다. 속도도 빠르며 CG나 외국어를 이용한 대중적인 웃음을 줄 수 있는 장면이 많습니다. 물론 이영애의 기존의 이미지를 타파하는 연기도 많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후반부에는 좀 다릅니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과 기존의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을 뒤섞은 듯 합니다. 잔혹한 장면임에도 웃기지만 단순히 웃고 넘기기에는 어딘지 걸리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복수 3부작의 이전 작품이었던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 보이’가 개인적인 복수에 관한 작품이었다면 ‘친절한 금자씨’는 사회적 복수에 관한 작품입니다. ‘올드 보이’에서 복수를 하는 자와 복수 당하는 자의 입장이 역전되고 악인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와 불행한 과거가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것과 달리 ‘친절한 금자씨’에서의 백선생은 동정의 여지가 없으며 이유 없이 살인을 명백한 악인입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는 징벌받아 마땅한 백선생에게, 징벌해야 마땅한 사람들이 응징하지만 결코 그 뒷맛은 개운하지 않습니다. 복수를 한다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후련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유머스럽게 일깨웁니다.
특별한 반전이 없어서 내러티브는 다소 단선적인 감은 있지만 테크닉 면에서 박찬욱 감독은 완성된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롱 테이크와 교차 편집, CG의 적절한 배치와 톡톡 튀면서도 절제된 대사와 나레이션의 묘미는 단 한 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하며 소품과 세트, 영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친절한 금자씨’는 주연 이영애처럼 매끄럽기만 합니다.
조연과 카메오를 발견하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가장 잘 나가는 조연인 오달수와 ‘올드 보이’에서 이우진(유지태 분)의 경호실장이었던 김병옥, 김부선 등의 조연 이외에도 최근 아들을 잃는 사고를 당한 임수경(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던 그녀가 간수로 등장하는 것도 전복을 통한 유머입니다.), 송강호, 신하균, 강혜정 등과 스포일러가 될까봐 밝힐 수 없는 모 남자 배우가 종반부에, 그리고 엔드 크레딧에서 이름을 확인했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는 아쉽게 놓친 윤진서와 류승완(나중에 DLP로 재감상하면 확인해봐야 겠습니다.)이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는 결코 조연과 카메오에 어설프게 의존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타이틀 롤 이금자 역의 이영애는 도도한 이미지와 미모로만 연기자 생활을 해온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도도한 이미지를 관리하는 이영애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 ‘배우 이영애’를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영애가 아니라면 성립될 수 없는 작품입니다. 도도한 이미지를 관리해 왔기에 관객에게 먹힐 수 있는 장면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영애가 예쁘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초반부 이영애의 망가지는 모습에 정신없이 웃다보면 중반 이후부터는 온전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됩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 보이’보다 더 자극적인 복수를 기대한 관객은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여성적이며 섬세하고 배려심 많은 ‘친절한’ 복수도 하나의 복수 방법입니다. 유사 가족에 대한 암시와 함께 ‘친절한 금자씨’는 아니, 복수 3부작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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