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08일
씬 시티 - 만화와 느와르의 혼성 잡종
프랭크 밀러의 원작 만화를 그와 함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영화화한 ‘씬 시티’는 지나칠만큼 스타일에 경도된 영화입니다. 흑백 화면에 이따금씩 뒤섞이는 원색은 매우 강렬하고 액션의 표현에서는 만화와, 스페셜 게스트 감독으로 초청된 쿠엔티 타란티노 스타일의 웃음이 과격하게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만화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한국에서 흥행하기 어렵다는 주지의 사실뿐만 아니라 러닝 타임 내내 주가 되는 흑백 화면은 더욱 흥행에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X파일’ 시즌5의 여섯 번째 에피소드였던 ‘프랑켄슈타인, 그 이후’가 흑백으로 제작되어 국내에 방영되었던 1999년 당시, 시청자들이 방송 사고인 줄 알고 방송국에 문의를 빗발치게 해서 ‘이 에피소드는 흑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KBS2’라는 자막을 넣었어야 했던 해프닝을 상기하면 흑백 영화 ‘씬 시티’가 애초부터 내포한 한계를 알 수 있습니다.개봉 당시부터 멀티플렉스들도 이런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첫 주부터 작은 관 하나에서만 상영했고 평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만 직접 극장에서 본 후의 감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주얼만이라도 훌륭하다면 만족스럽겠다는 겸손한 기대 이상으로 내러티브와 블랙 유머, 그리고 대사와 액션이 매력이 구석구석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만화를 영화화한 ‘스파이더맨2’나 ‘배트맨 비긴즈’의 소위 ‘맨 류’나 비슷한 분위기의 ‘헬보이’, ‘젠틀맨 리그’, ‘월드 오브 투모로우’보다 비주얼은 ‘씬 시티’가 한 수 위입니다. 만화책을 한 컷씩를 가위로 오려 그대로 스크린에 붙인 듯한 느낌입니다. 피가 튀거나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는 고어 장면도 희화화됩니다. 고어 장면들이 흑백으로 펼쳐지기에 더욱 과감한 표현이 가능했다는 점 역시 장점입니다.
톡톡 튀는 하드 보일드 느와르 스타일의 대사들 또한 매력적입니다. 나레이션이라는 촌스러울 수 있는 기법 덕분에 ‘씬 시티’의 3류 인생들의 개성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내러티브에 있어서도 타탄티노나 참여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펄프 픽션’처럼, 앞과 뒤의 사건들이 시간순을 무시한 채 배치되면서도 작은 연결 고리로 유기적으로 얽혀있습니다. 이런 작은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개성이 넘치는 영화 속 캐릭터들로 분한 초호화 캐스팅 배우들의 분장과 연기를 보는 것 역시 큰 즐거움입니다. 여자를 구하려는 세 남자 주인공 중에서 퇴역 형사 하티건(브루스 윌리스 분), 잔뜩 폼을 잡는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웬 분)보다는 헬보이의 성인 버전과 같은 단순 무식한 마브(미키 루크 분)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같은 단신인 미키 루크가 분장을 통해 거구의 사나이로 등장해 치고받는 화려한 액션은 단연 ‘씬 시티’의 백미입니다. 섹시한 순정파 스트립 댄서 낸시 역으로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제시카 알바, 대사 한 마디 없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케빈 역의 엘리야 우드, 부패한 주교 역의 루트거 하우어, 희대의 강간범 로크 역의 닉 스탈, 뺀질거리는 재키 보이 역의 베니치오 델 토로, 일본도를 휘두르는 미호 역의 데본 아오키, 영화에 단 두 장면만 등장하는 ‘그 남자’ 역의 조쉬 하트넷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배우들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 또한 ‘씬 시티’만의 매력입니다.
# by | 2005/07/08 12:37 | 영화 | 트랙백(4)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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