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름신 강림('에이리언' 4부작 dvd 박스셋 오픈 케이스)
에이리언 - 여전히 유효한 걸작 SF 호러
에이리언2 - 모성과 모성의 불꽃튀는 대결
에이리언3 - 에이리언보다 무서운 죽음의 자본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 너무 짧은 롤러 코스터
인게이지먼트 - 이것이 인생이다
에이리언의 유충과 함께 용광로로 뛰어든 리플리를 군이 복제인간으로 부활시켜 에이리언을 번식하려 합니다. 에이리언을 사육하겠다는 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리플리와 베티 호의 승무원들은 위기에 빠집니다.
'에이리언3' 이후 ‘‘에이리언4’가 나온다면 이번에는 리플리가 에이리언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이라는 농담을 한동안 하고 다녔습니다만 1997년 정말 ’에이리언4‘가 개봉되었습니다. ‘델리카트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의 장 피에르 주네가 감독한 ‘에이리언4’는 ‘Alien: Resurrection(부활)’ 이라는 원제처럼 리플리와 에이리언의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시리즈에서 리플리와 에이리언이라는 필수 요소를 제외한다면 각 편의 감독들이 완벽하게 자신의 영화로 소화해낸 것처럼 장 피에르 주네도 ‘에이리언4’를 자신의 영화로 소화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잃어버란 아이들의 도시’의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쥐와 배우 도미니크 피뇽과 론 펄만을 합류시킨 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화면의 때깔이나 툭툭 튀어나오는 기괴함은 장 피에르 주네답습니다. 물속을 유연하게 헤엄치는 에이리언의 모습도 인상적이며 결말에 등장하는 아기 에이리언은 기괴함을 동화적으로 승화시키는 장 피에르 주네다움의 결정체입니다.
하지만 과거 공동 감독으로 함께 작업했던 마르끄 까로가 ‘에이리언4’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인지(그는 ‘에이리언4’의 몇 가지 컨셉 디자인에만 관여했을 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장 피에르 주네 자신이 각본을 쓰지 않아 자기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인지 알 수 없지만 ‘에이리언4’는 어딘지 허전한 작품입니다. DVD 서플에서는 폭스 사의 간섭이 없었다고 했지만 프랑스에 비해 장 피에르 주네가 마음껏 작업할 만한 분위기가 마련되지 못했던 것은 자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에이리언4’는 장 피에르 주네의 영화와 상업 영화 사이를 방황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에이리언4’는 이전까지의 세 편의 작품들에 누를 끼친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리플리는 산성피를 내뿜는 천하무적의 여전사가 되어 감정 이입이 어렵습니다. ‘에이리언’의 공포, ‘에이리언2’의 모성, ‘에이리언3’의 희생과 같이 부각되는 주제 의식이 ‘에이리언4’에는 없습니다. 에이리언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리플리는 리플리답지 않습니다. 리플리가 리플리이기는 하지만 리플리가 아닌 것입니다. 조연급의 면면도 화려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여전히 두 눈은 초롱초롱한 위노나 라이더이지만 퇴물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흡인력이 약합니다. 차라리 도미니크 피뇽과 론 펄만, 브랫 두리프가 비중은 적지만 위노나 라이더보다는 인상적입니다. 나이가 들어버린 시고니 위버를 대신해 새로운 에이리언 시리즈를 이끌어 가도록 의도한 위노나 라이더의 출연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에이리언도 강력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에이리언3'로 에이리언을 끝장내려 했으나 결국 작품성을 인정받아 '에이리언4'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했지만 리플리를 지구로 끌고가는 데 성공한(지구로 향하는 베티 호에 또다른 에이리언이 타고 있으며 '에이리언5'의 단초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 피에르 주네였지만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신통치 않았습니다. 결국 폭스는 ‘에이리언5’를 포기하고 몇 년동안 묵혀둔 프로젝트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를 꺼내들기에 이릅니다.
에이리언 - 여전히 유효한 걸작 SF 호러
에이리언2 - 모성과 모성의 불꽃튀는 대결
에이리언3 - 에이리언보다 무서운 죽음의 자본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 - 너무 짧은 롤러 코스터
인게이지먼트 - 이것이 인생이다

'에이리언3' 이후 ‘‘에이리언4’가 나온다면 이번에는 리플리가 에이리언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이라는 농담을 한동안 하고 다녔습니다만 1997년 정말 ’에이리언4‘가 개봉되었습니다. ‘델리카트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의 장 피에르 주네가 감독한 ‘에이리언4’는 ‘Alien: Resurrection(부활)’ 이라는 원제처럼 리플리와 에이리언의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시리즈에서 리플리와 에이리언이라는 필수 요소를 제외한다면 각 편의 감독들이 완벽하게 자신의 영화로 소화해낸 것처럼 장 피에르 주네도 ‘에이리언4’를 자신의 영화로 소화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잃어버란 아이들의 도시’의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쥐와 배우 도미니크 피뇽과 론 펄만을 합류시킨 점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화면의 때깔이나 툭툭 튀어나오는 기괴함은 장 피에르 주네답습니다. 물속을 유연하게 헤엄치는 에이리언의 모습도 인상적이며 결말에 등장하는 아기 에이리언은 기괴함을 동화적으로 승화시키는 장 피에르 주네다움의 결정체입니다.
하지만 과거 공동 감독으로 함께 작업했던 마르끄 까로가 ‘에이리언4’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인지(그는 ‘에이리언4’의 몇 가지 컨셉 디자인에만 관여했을 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장 피에르 주네 자신이 각본을 쓰지 않아 자기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인지 알 수 없지만 ‘에이리언4’는 어딘지 허전한 작품입니다. DVD 서플에서는 폭스 사의 간섭이 없었다고 했지만 프랑스에 비해 장 피에르 주네가 마음껏 작업할 만한 분위기가 마련되지 못했던 것은 자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에이리언4’는 장 피에르 주네의 영화와 상업 영화 사이를 방황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에이리언4’는 이전까지의 세 편의 작품들에 누를 끼친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리플리는 산성피를 내뿜는 천하무적의 여전사가 되어 감정 이입이 어렵습니다. ‘에이리언’의 공포, ‘에이리언2’의 모성, ‘에이리언3’의 희생과 같이 부각되는 주제 의식이 ‘에이리언4’에는 없습니다. 에이리언에게 모성애를 느끼는 리플리는 리플리답지 않습니다. 리플리가 리플리이기는 하지만 리플리가 아닌 것입니다. 조연급의 면면도 화려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여전히 두 눈은 초롱초롱한 위노나 라이더이지만 퇴물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흡인력이 약합니다. 차라리 도미니크 피뇽과 론 펄만, 브랫 두리프가 비중은 적지만 위노나 라이더보다는 인상적입니다. 나이가 들어버린 시고니 위버를 대신해 새로운 에이리언 시리즈를 이끌어 가도록 의도한 위노나 라이더의 출연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에이리언도 강력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에이리언3'로 에이리언을 끝장내려 했으나 결국 작품성을 인정받아 '에이리언4'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했지만 리플리를 지구로 끌고가는 데 성공한(지구로 향하는 베티 호에 또다른 에이리언이 타고 있으며 '에이리언5'의 단초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 피에르 주네였지만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신통치 않았습니다. 결국 폭스는 ‘에이리언5’를 포기하고 몇 년동안 묵혀둔 프로젝트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를 꺼내들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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