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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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 - 영화를 위한 영화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남자라는 이름의 수컷

동수(김상경 분)는 선배인 이형수 감독의 회고전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온 후 그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 영실(엄지원 분)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동수가 영실에게 반해 그녀에게 말을 걸자 의외로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극장전’은 영화에 관한 영화입니다. 포스터에 맨 앞에 이름이 박힌 주연이 김상경이지만 그가 등장할 때까지는 영화의 절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극중의 이형수 감독의 영화 속 영화가 먼저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있는 액자식 구성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것입니다. 영화 감독을 지망하는 동수의 행동은 은근히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인 상원(이기우 분)의 행동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안경점 앞에서의 만남이나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에로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베드 씬 등은 카메라 앵글과 구도 면에서도 거의 동일합니다. 미디엄 샷에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가는 장면에서는 80년대 이전의 한국 영화의 카메라 워킹을 연상케 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모두 보았습니다만 충격적일 만큼 사실적인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비교적 엇비슷한 작품들로 필모그래피가 채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의도된 바 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승전결이 불분명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극장전’은 기승전결이 분명하며 ‘오! 수정’에서 볼 수 있었던 귀여운 장면이나 대사도 자주 등장합니다. 고 이은주의 사망으로 인해 지금 다시 보면 그다지 유쾌하게 감상하기 어렵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분명히 ‘오! 수정’은 분명 유쾌한 작품입니다. ‘극장전’도 이에 못지 않은 작품입니다. 동수와 영실, 영화 속 영화에서의 상원과 영실의 행동 모두 홍상수 영화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른바 ‘먹물’에 대한 혐오가 거의 없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들의 깜찍한 행동과 돌발적인 대사로 인해 즐겁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 두 번째 출연하는 김상경은 ‘생활의 발견’에서의 이미지와 비슷하지만 보다 어리숙하고 멍청한 남자로 등장합니다. 키가 크고 동안인 이기우는 귀엽더군요. ‘극장전’ 최대의 발견은 엄지원이었습니다. ‘주홍글씨’에서 한석규와 고 이은주, 성현아에 밀려 크게 어필하지 못했던 그녀가 ‘극장전’에서는 가장 많은 출연 시간 동안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주홍글씨’에서는 짜증스런 이미지였지만 ‘극장전’에서 보여주는 영화 속 영화의 청순한 이미지와 여배우로서의 도도한 이미지를 모두 잘 소화했습니다. 어떤 색깔을 입혀도 잘 어울리는 백지와 같은 이미지를 잘 활용한 것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출 연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것은 아마도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엄지원은 놀랍게도 1977년생입니다. 여지껏 20대 초반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에서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극장전’의 또 다른 주인공은 종로와 남산을 비롯한 서울 도심의 풍경입니다. 과거 홍상수의 작품들이 대부분 중소도시나 서울의 변두리와 같이 익명성에 의존한 배경이 위주가 되었다면(‘오! 수정’에서는 남산의 케이블카가 등장한 적이 있군요.) ‘극장전’에서는 시네코아와 인사동을 비롯한 종로의 거리나 남산의 낯익은 배경이 등장합니다. 홍상수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루는 방식은 마이클 만이 ‘히트’나 ‘콜래트럴’에서 LA를 다루는 방식과는 매우 다릅니다. 마이클 만이 LA를 묘사하는 방식은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극장전’에서의 서울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운이 좋으면 거리에서 여배우도 만날 수 있는 그런 도시 말입니다.

배우들에게 술을 먹이고 술 마시는 장면을 연기시키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이기에 영화를 보고 나면 술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극장전을 관람하고 집에 돌아온 새벽 세 시, 저는 병맥주 한 병을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덧글

  • 네모스카이시어 2005/05/31 11:43 #

    아아 극장전...이 영화도 보고싶었는데 개봉했군요.
    보고싶은 영화는 쌓여만 가는데 돈은 없고...일주일에 한번 씩 보겠노라 한 이후로 미처 보기도 전에 간판 내린 작품도 벌써 몇개 되는군요. 난감해요...orz

    아참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번 영화에서 김상경과 엄지원은 술을 마시지 않은 채 연기했다고 합니다.(어딘가의 인터뷰에서 김상경씨가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 이규영 2005/05/31 13:32 #

    엄지원은 예전에 정재완이 시사파일 어쩌고 하는 프로 할때부터 거기 재연연기자로 나왔던 배우잖아요. 무지 경력은 오래됐습니다. 영화는 <오버더레인보우>로 데뷰했던 기억이 나네요.
  • 디제 2005/05/31 15:17 #

    네모스카이시어님/ '극장전'에서 배우들이 술을 마시지 않고 연기했다니 의외군요.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촬영 원칙을 포기한 거겠군요.
    이규영님/ TV를 잘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극장전'에서는 확실히 예뻐보이더군요.
  • 다마네기 2005/05/31 15:18 #

    ㅎㅎ 어제 수제비를 드시고 보러가신 "심야 영화" 가 이 영화 이였군요~~
    저도 이 영화 무지 기다리고 있는데 강릉은 아직 개봉이 않 됐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이번 "극장전" 을 빼고 홍 감독님 전작들을 다 봤답니다.

    전 [ 강원도의 힘 ] 이 (아직까지는 ^^) 제일 좋아요! ^^

    그나저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에서 "기승전결" 이 없는 건 감독님이 의도한 거라고 합니다.
    끝까지 쭉~~~ "평행 구도" 의 영화를 찍어 보고 싶으셨대요... ^^

    정말 [주홍 글씨] 에서 엄지원씨는 영~~ 아니였는데 (캐릭터 구축을 잘 못하셨던 것 같아요...) "극장전" 에선 정말 그녀의 연기가 기대 됩니다.
    저도 디제님 처럼 엄지원 이라는 "배우" 를 재발견 하게 되는 즐거움를 맛 보고 싶네요...
    ( 그러고 보니 저랑 엄지원씨랑 동갑 이네요...ㅋㅋ )

    그리구요~~ 오늘 늦게 일어나서 "수제비" 못 해 먹었어요... 푸 하하하!!!
  • 다마네기 2005/05/31 15:24 #

    이러고 보면 홍 감독님은 배우들의 연기 지도를 잘 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여배우들...ㅋㅋ )
    대표적으로 [오! 수정] 에서의 이은주, [생활의 발견] 의 예지원, 그리고 다기가 아직 보진 못했지만 [극장전] 에서의 엄지원.

    ㅎㅎ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에서의 이응경 이나 조은숙도 좋았지요...
    [강원도의 힘] 에서 오윤홍도...

  • 디제 2005/05/31 17:53 #

    다마네기님/ 홍상수 감독은 여배우들에게 다소 짓궃은 타입의 감독일 겁니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에서는 술을 마시게 하고 촬영했으니까요.
  • yasujiro 2005/06/01 01:13 #

    그의 일관성은 아마 세월이 지나면 ~론의 형태를 띤 작가주의로 논의될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그의 작품들을 동어반복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듯 합니다만.(사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섣불리 지지하기가 망설여지는 작가입니다만)
  • 디제 2005/06/01 12:00 #

    yasujiro님/ 홍상수 감독이 데뷔한지 10년이 되었는데 이제 슬슬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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