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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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 실망스런 하루키의 동어 반복

소설을 쓰겠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없는 스미레와 초등학교 선생인 나는 친구 사이입니다. 나는 스미레를 사랑하지만 스미레는 나를 남자로서 느끼지 않습니다. 스미레는 사촌의 결혼식에서 중년의 여성 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중편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지구 궤도를 맴돌았던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에서 따온 제목에서 말해주듯 맴돌기는 하지만 엇갈릴 수 밖에 없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는 스미레를 사랑하지만 스미레는 나를 이성으로 보지 않으며 스미레는 뮤를 사랑하지만 뮤는 스미레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엇갈린 사랑은 ‘노르웨이의 숲’(번역명 ‘상실의 시대’)이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다뤄진 소재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동어 반복입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의 연인’은 다소 실망스런 작품입니다. 중간중간 재기발랄한 문체와 클래식이나 와인에 심취한 특유의 댄디한 취향이나 ‘먼 북 소리’의 저술의 소재가 된 그리스 여행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 있지만 그가 추리소설에서 따온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은 매우 연결고리가 취약합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있지만 지나치게 관념적입니다. 스미레의 실종 이후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도 전혀 묘사되지 않았으며 정말 그녀가 돌아왔는지의 여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열린 결말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도 허술한 서사 구조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댄스 댄스 댄스’로 이어지는 청춘 4부작이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노르웨이의 숲’에 비하면 비교적 근작들인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나 ‘해변의 카프카’는 다소 아쉬운 작품들입니다. 초기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치밀어오르는 듯한 상실감과 슬픔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습니다. 그의 신작이 여전히 계속 출판된다는 사실은 행복하지만 이제는 시드니 올림픽 르포집이나 ‘언더그라운드’ 따위로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아깝기만 하군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애프터 다크’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요.

덧글

  • TITANESS 2005/05/12 15:51 #

    전 해변의 카프카도 그닥 맘에 안들엇어요.. 역시 하루키는 에세이가 최고인듯합니다. :)
    (뭐 언더 그라운드야... 글쟁이가 쓰고싶다고하면 쓰는것이니 뭐라 할 수 없을것 같아요.^^)
  • 위스테리아 2005/05/12 16:03 #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근작이었군요. 그렇다면 정말 실망인데... ..., 저도 캐릭터(뮤=레이코, 스미레=미도리, 나=와타나베, 이런 식으로)라던지 인물의 관계 등이 너무 반복되는 느낌이어서 실망했거든요. =_=a
  • 네모스카이시어 2005/05/12 16:07 #

    흐음...그런가요. 하루키의 근작이라..보고싶었는데..
    물론 감상이야 주관적이니 제가 읽고 좋다고 느낄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요.
    그나저나 하루키는 에세이가 좋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처음 하루키란 작가가 마음에 들었던 계기가 에세이집을 읽고부터였거든요.(제목은 기억이 안나는군요. 우연히 읽은거라...orz)
  • 디제 2005/05/12 16:23 #

    TITANESS님/ 저도 그전에는 에세이를 좋아했는데 요즘 에세이는 너무 부르조아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위스테리아님, 네모스카이시어님/ '비교적 근작'입니다. 최신작은 아니죠. '해변의 카프카'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애프터 다크' 이전의 작품이죠.
  • xmaskid 2005/05/13 05:16 #

    애프터 다크는 꽤 가볍게 볼수 있었습니다만(페이지 수가 적은 관계로...^^) 역시 예전만큼은 못한듯 합니다.(근데 스푸트니크 보다는 읽을만 합니다..)
  • 디제 2005/05/13 15:56 #

    xmaskid님/ 차라리 가벼운 편이 낫습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해변의 카프카'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무겁더군요.
  • shyuna 2005/05/14 22:08 #

    다들 하루키는 에세이를 칭찬하던데.. 소설만 읽어봤을 뿐, 에세이는 못 읽어봤네요..
    하루키의 소설은 '허무'를 강조하느라 너무 붕 뜨는 감이 있어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지 못하게 되는 매력이 있어서, 읽곤 합니다.. 다음 번에는 에세이를 읽어봐야겠네요..
  • 디제 2005/05/14 23:43 #

    shyuna님/ 하루키의 에세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 합니다. 그다지 허무적이지 않고 적당히 유머스럽습니다.
  • 구름 2008/01/02 05:25 # 삭제

    시나리오의 허술함이라기 보단 전체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그런 이야기가 나온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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