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말리아의 군벌 아이디드를 생포하기 위해 미군이 투입되었다가 습격을 받고 간신히 귀환하는 내용이라는 간단한 플롯의 이 작품에서는 미군 병사 한 명 한 명의 피격과 부상, 죽음이 징그러울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됩니다. 특히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은 병사의 혈관을 끄집어 내는 장면을 극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에는 왠만한 고어 신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제가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식량을 통제하고 30만을 죽였다는 독재자 아이디드를 생포하는데 왜 수많은 소말리아의 시민들이 총을 잡고 아이디드를 지키려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그때문에 소말리아의 시민군은 무식하고 지저분한 흑인 게릴라로 치부되고 '해방군' 미군은 희생자처럼 그려집니다. 이것은 이라크 문제를 바라보는 현재의 미국의 입장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소말리아와 이라크에 미군을 투입했던 간에 소말리아와 이라크에서 미군 투입을 요청한 적은 없었습니다. 결국 소말리아에서 미군은 물러나고 말았고 이라크에서도 발을 빼려 하고 있습니다. 수렁은 빠지기 전부터 알아봐야 하는 것을, 이미 베트남에서 경험했지만, 고작 200년 밖에 안된 일천한 역사의 풋내기 국가 미국의 천박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영화 자체의 비주얼과 사운드는 탁월합니다. '블레이드 러너'이후 20여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한 현역 감독인 리들리 스콧과 제리 브룩하이머가 만났다면 비주얼에 있어서는 더 바랄게 없지요. 황색톤과 청색톤으로 슬로우 모션 화면이 적절히 교차되며 신 전환은 재빠르고 리얼한 특수효과에 묵직한 중저음과 사방에서 울리는 총성 덕분에 영화를 즐기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전쟁 영화의 제작이 드문 요즘 아비규환의 현대 시가전을 정말 기막히게 그렸음에는 틀림없습니다. 수퍼비트 DVD가 선사하는 dts 소리 샤워는 홈 시어터의 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캐스팅은 또 어떻습니까.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지만 진지함이 돋보이는, '진주만'으로 눈에 익은 조쉬 하트넷, 젊은 시절의 마이클 빈 같은 이미지를 보이는 에릭 바나(저는 헐크를 보았을 때에도 저 배우가 '블랙 호크 다운'에 나오는 줄은 몰랐습니다. '트로이'에서는 또다른 이미지더군요.), 행정병이지만 전투에 투입되어 행운이 따라 다니는 이완 맥그리거, 처음 부대에 배속되어 실전에 투입되지만 불운하게도 헬기에서 추락하는 올랜도 블룸까지 면면도 화려합니다. 아마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아마겟돈'과 '퍼펙트 스톰'에서 굵직한 조연으로 등장했던 데이빗 피트너(라고 읽는 것 맞나요? 성이 'Fichtner'던데...)도 알아 보셨을테고요. 결국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연기가 겉도는 배우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왜 수천명의 소말리아 인들과 십수명의 미군이 죽거나 다쳐야 했나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침묵은 거짓말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과만 있고 원인은 없지요. 때문에 감상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며 쓸데 없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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