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IP 직배 영화였던 '대부3'의 개봉을 앞두고 MBC에서 '대부' 1,2편을 연속해서 방영해서 그때 저는 처음으로 대부를 접했습니다. 사실 TV에서 1,2편을 볼 때에는 캐릭터들이 비슷비슷해서 잘 구분도 가지 않았고 스토리도 간신히 쫓아갈 만큼 영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습니다만 짧고 굵게 지나가는 폭력 신과 무거운 분위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대부3'야 미스 캐스팅과 혹평으로 단 하나의 아카데미도 거머쥐지 못한 채 '사생아' 취급을 받았습니다만 스크린 속에서 마이클 꼴레오네의 삶이 끝나자 1990년 당시 저는 이 시리즈가 대단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고 원작 소설과 가족 계보 등을 뒤져가며 "공부"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나마 이 방대한 가계(家系)가 정리되더군요.
마피아인 꼴레오네 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배신과 음모를 다루며 가문의 막내 아들인 마이클이 대부가 되는 과정을 그린 '대부 1'은 영화가 그렇듯이 볼 때마다 느낌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처음 보았던 1990년에는 그냥 멋있군, 하며 보았습니다만 서른이 넘어 보는 지금, 대부는 '가부장'을 다룬 영화군, 하는 느낌입니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대부'를 볼 때마다 더 잘 몰입이 되고, 러닝 타임이 더더욱 짧게 느껴집니다. 175분이라는 러닝 타임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가족(패밀리)들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가장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자들은 뒷전으로 물러나 패밀리의 일에 대해 손댈 수 없는 것이 바로 '대부'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수와 만수'에서 박중훈이 기가 막히게 흉내를 냈던, 말론 브란도가 분한 비토 꼴레오네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밖에서는 무자비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식탁에서는 절대 일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아들의 죽음 앞에 나약해 지고, 손자의 재롱을 즐거워 하는 그였지만 누구에게도 본심을 털어 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런 외로움은 마이클(알 파치노 분)이 고스란히 물려 받게 되는 것이죠. 매형의 살해를 지시하고 확인하고 돌아온 그에게 아내인 케이가 집무실에까지 들어와 캐묻습니다만 그는 거짓말로 일관합니다. 그를 지켜보는 아내와는 방문이 닫히며 남자들만의 세계로 격리되고 말죠.
저는 아직 결혼은 안했습니다만 결혼한다면 가장이라는, 아버지라는 위치는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버지와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P.S. "눈빛만으로 여자 옷을 벗길 수 있는 사내"라는 평가를 듣는 알 파치노의 뽀송뽀송한 시절이 궁금하신 분에게 '대부 1'은 필견입니다. 단신이지만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요즘 헐리우드에 알 파치노와 같은 카리스마를 가진 젊은 남자배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다들 너무 이미지가 가볍거나 여성적입니다. 글쎄요, 콜린 패럴이나 에릭 바나 정도가 조금 기대되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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