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덴티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초반부 11명의 사람들이 모텔에 모여들기까지의 우연이 겹쳐지는 과정을 속도감 넘치게 편집한 부분입니다. 사고와 우연으로 인해 정신없이 사람들이 모텔로 모이게 되는 과정은 보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단연 백미입니다.
폭우와 천둥, 번개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운데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해나가는 영화의 분위기는 단순한 스릴러 이상의 호러 무비의 장점도 갖추고 있으며 중반부 이후 시체가 사라지거나 사람들의 생일이 모두 동일한 것은 합리적인 추리 과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미스테리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이덴티티’의 또다른 장점은 두 가지 스토리가 중반부까지 변주되며 보는 이의 의문을 증폭시킨다는 것입니다. 스토리의 주된 흐름은 모텔에 모인 11명의 연쇄 살인이지만 6명을 살해하고 사형을 코앞에 둔 말콤 리버스의 형 집행 여부에 관한 스토리가 중간중간 개입되고 있습니다.
전반부까지의 강력한 흡인력은 두 가지 스토리를 결합시키는 다소 김빠지는 결말에 의해 어정쩡하게 수습됩니다. 최근의 스릴러들이 선택하는 전형적인 결말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형급 스타라고 보기 어려운 존 쿠삭이나 레이 리오타를 캐스팅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형 스타를 캐스팅해 스토리의 결말을 짐작(대형 스타는 영화상에서 잘 죽지 않으니 영화의 결말을 예상하기 쉽죠.)케 하기보다 캐스팅비용을 아끼며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스릴러의 장점을 비교적 참신한 시나리오로 최대한 발휘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범인의 정체는 헐리우드에서 아직도 금기시하고 있는 부분을 건드린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세븐’이나 ‘메멘토’에는 못미치지만 최근 개봉된 ‘쏘우’보다는 나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렌디티피’, ‘존 말코비치 되기’, ‘그로스 포인트 블랭크’ 등에서 뺀질거리고 가벼운 캐릭터였던 존 쿠삭이 유머 감각을 철저히 배제한 진지한 캐릭터로 열연하는 것도 볼 만하고 ‘스파이더맨2’에서 닥터 옥토퍼스로 출연했던 알프레드 몰리나도 심리학 박사 말릭으로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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