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15일
여자, 정혜 - 트라우마, 외로움, 그리고 치유
김지수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모교의 연극영화과의 학생 연극을 관람하러 왔더군요. 학교에는 워낙 연예인이 흔해서 특별히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바싹 마르고 얼굴이 조막만해서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아서 그 이후에 어떤 드라마들에 출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올해 우리 나이 서른 넷의 김지수가 영화에 조연으로라도 출연한 작품이 있었는지 역시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것은 ‘여자, 정혜’가 처음입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정혜는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외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기르며 외로움을 벗어나려 하지만 그녀에게는 외로움 말고도 무언가에 의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글을 써서 등기로 보내는 작가(황정민 분)가 있습니다.
정혜가 무엇 때문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는지 추측하는데 필요한 단서가 친절하게 제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대사와 음악이 극도로 절제되고 대신 과장된 듯한 일상의 소음 덕분에, 정혜의 외로움이 충실하게 전달되는 것 이상으로 답답함마저 자아내는 영화에서, 트라우마의 정체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면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겠지요. 비록 광각렌즈가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타락천사’와 같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비추는 정혜의 얼굴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비추는 뒷모습에서 절절한 외로움이 묻어나는 듯 합니다. (일상성을 강조하기 위해 화장기가 없는 김지수의 모습도 몇 번 등장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겠죠. 이런 장면의 촬영에 동의한 것에서 김지수도 상당한 결의를 다지고 ‘여자, 정혜’에 출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큐멘터리처럼 관조적인 핸드 헬드도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와 같이 절제된 정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애정만세’처럼 종반부에 여주인공의 흐느낌을 롱테이크로 잡아내는 장면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극중의 정혜처럼, 툭 건드리면 금새 울음을 터뜨리거나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김지수의 이미지는 그녀가 드라마를 통해 축적한, 결코 녹록치 않은 연기력과 맞물려 매우 적절한 캐스팅이었습니다. 4월의 초기대작인 ‘달콤한 인생’에서 악역으로 출연하는 황정민의 어리숙하고 순진해 보이는 연기도 좋았습니다.
러닝 타임 내내 절제된 영화는 엔딩에서도 결코 섣부른 급반전으로 신중함을 무너뜨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치유와 새로운 사랑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절제된 감수성을, 과장된 웃음이 판치는 기획 영화가 범람하는 한국 영화판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