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출발, 비디오 여행'(누군가 이걸 "출발, 스포일러 여행'이라고 제목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동감합니다.) 따위는 절대로 안보는 타입이고 신문의 영화평이나 카페들의 영화 감상문도 잘 안보고 독선적(!)으로 영화를 고르는 타입입니다만 샤를리즈 테론이 분한 에일린 워노스가 사랑에 속아(그것도 같은 여자를 사랑하고) 나락으로 굴러 무너져 갔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특별히 드라마틱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자체의 흡인력과 무엇보다도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에 110여분의 러닝 타임은 훌쩍 지나가 버리더군요.
기미야 분장으로 때울 수 있겠지만 우아한 팔등신의 미녀가 뱃살이 늘어지도록 살을 찌우고 건들거리며 밑바닥 인생(그것도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관객은 스크린에서 샤를리즈 테론의 원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미녀의 모습으로 언뜻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흠을 잡으려 할테지만 그녀는 러닝 타임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샤를리즈 테론이 아니라 에일린 워노스더군요. '몬스터'가 청량음료 같은 오락 영화는 아니었으니 결코 기분 좋게 극장문을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이탈리안 잡'을 보고 싶어졌으니 샤를리즈 테론이란 배우가 제게 강하게 어필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군요.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내내 '델마와 루이스'나 '보이즈 온 더 사이드'가 떠올랐습니다만 엔드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는 '몬스터'가 사랑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미칠듯이 사랑하다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파멸하고 만다는 것은 사랑 영화의 단순한 공식이니까요.
월요일 아침에 그렇게 극장에 사람이 많은 지 몰랐습니다. 아직 대학생들 기말고사 기간 아니었던가요? 영화 시작 10분전에 극장에 도착했습니다만 당일표 발매 창구에 200명 정도의 번호표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오늘 못보면 수요일 아침에라도 다시 와야하나 싶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예매 창구에서 표를 샀는데 상영관에 뛰어들어가니 막 "나두야간다" 예고편이 끝나고 본 영화가 시작되려 하더군요. 운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영화를 기왕 본다면 단1초도 놓치지 싫어하는 타입이라서요.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