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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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 어둠의 ‘라라랜드’, 성인용 ‘시네마 천국’ 영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할리우드 묘사한 군상 서사극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2022년 작 ‘바빌론’은 1920년대 후반 할리우드를 묘사한 군상 서사극입니다.

멕시코 출신 이민자로 영화판에 안착하기를 꿈꾸는 매니(디에고 칼바 분), 배우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한 넬리(마고 로비 분), 정점을 누리고 있는 대스타 배우 잭(브래드 피트 분)이 주인공입니다.

유능한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조반 아데포 분), 무성 영화 자막을 담당하는 중국계 여성 페이(리 준 리 분), 영화 전문 기자 일리노어(진 스마트 분)까지 할리우드를 누비는 다양한 직업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흥하고 영화로 망하는 영욕의 세월을 온몸으로 맞습니다. 매니, 넬리, 잭은 물론 일리노어까지 ‘꿈의 공장’으로 불리는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지닌 매력에 흠뻑 젖은 인물들입니다.

‘꿈의 공장’의 명과 암

서두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 흥청망청 잭의 파티는 술, 집단 섹스, 마약으로 점철되어 할리우드의 화려함과 퇴폐의 극치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광란의 파티 다음 날 아침 일상으로 돌아간 넬리, 시드니, 페이의 작고 누추한 집은, 겉으로 매끈하고 아름다운 할리우드 및 영화의 이면이 관련 종사자들의 힘겨운 현실로 채워져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어 등장하는 영화 촬영 장면은 한 편의 영화를 멋들어지게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력을 쥐어 짜내는 것을 넘어 운까지 따라야 하는지 압축합니다. 감독은 자연광을 놓칠 수 없는 해질녘 클라이맥스를 촬영하려 안절부절못하고 톱스타 배우는 숱한 엑스트라들을 배경으로 키스 신으로 클라이맥스에 방점을 찍습니다. 발암 물질 석면을 눈 효과를 내기 위해 들이붓고 엑스트라와 스태프가 촬영 도중에 사망해도 영화 제작은 멈추지 않습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잭은 부귀영화를 만끽하면서도 공허함 때문인지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으며 과거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조지(루카스 하스 분) 외에는 친구가 없어 고독합니다.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 잭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합니다. 넬리는 벼락스타가 되지만 약물과 도박을 끊지 못해 파멸을 자초합니다.

데이미언 셔젤 필모그래피 집약

‘바빌론’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세 편의 상업 영화 전작들을 집약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여배우의 출세는 ‘라라랜드’,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으나 정상을 유지해야 하는 불안과 고독에서 벗어나는 못하는 남자는 ‘퍼스트맨’을 연상시킵니다.

진정한 재즈가 무엇인지 주관이 뚜렷해 타협하지 않는 재즈 연주가의 고집은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에서 다뤄졌습니다. ‘바빌론’은 아예 시간적 배경을 ‘재즈의 시대’로 설정했습니다.

데이미언 셔젤의 연출작 외에는 영화 음악을 맡지 않는 영혼의 동반자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 역시 ‘라라랜드’와 흡사한 곡들이 있습니다. 데이미언 셔젤의 영상미와 ‘라라랜드’부터 함께했던 톰 크로스의 편집, 그리고 저스틴 허위츠의 음악이 어우러져 눈과 귀가 즐거워 3시간 9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데이미언 셔젤의 전작들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폭력, 섹스, 화장실 유머 등이 ‘바빌론’에서는 가감 없이 사용되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라라랜드’가 주인공들의 사회적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던 반면 ‘바빌론’은 성공 이후 몰락까지 다뤄 훨씬 어둡습니다. ‘라라랜드’에 비해 ‘바빌론’은 대중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데이미언 셔젤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기대했다면 ‘바빌론’은 동어반복으로 비판받을 여지도 있습니다.

진정한 주인공, 영화 그 자체

라라랜드’에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바빌론’에서 영화에 대한 직설적인 헌사를 바칩니다. ‘라라랜드’는 여주인공 미아를 통해 할리우드의 외곽을 배경으로 묘사하는 수준에 그쳤으나 ‘바빌론’은 영화와 할리우드 그 자체가 주인공입니다.

처음과 끝의 흑백 4:3 비율의 파라마운트 로고가 말해주듯 시대적 배경은 할리우드가 무성 영화를 버리고 유성 영화로 전환되는 혁명기를 선택했습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와 ‘아티스트’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설정해 무성 영화 스타가 유성 영화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

‘바빌론’은 무성 영화의 스타였던 잭과 넬리가 유성 영화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묘사하며 1952년에 ‘사랑은 비를 타고’를 매니가 극장에서 관람하는 장면이 결말입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라라랜드’도 오마주한 바 있습니다.

미래 영화 삽입은 옥에 티

제목 ‘바빌론’은 할리우드가 바빌로니아, 영화가 바벨탑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난 잭이 일리노어의 기사에 분노해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주제를 압축합니다. 일리노어는 “언젠가 잭과 같은 배우들이 사라져도 영화는 남아 후세 사람들이 관람하고 기억할 것이다”는 요지의 대사로 서글픈 긍정론을 잭에게 납득 시킵니다. 바빌로니아와 바벨탑은 사라졌지만 인류는 여전히 바벨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잭과 넬리는 제명을 살지 못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지만 결말의 매니의 회상 장면에서 이들이 출연한 영화 장면이 스쳐 갑니다. 너무도 분명한 ‘시네마 천국’ 결말의 오마주입니다. 잭과 넬리의 삶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영화를 통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주제의식으로 해석됩니다.

매니의 ‘회상’에는 매니의 시점에서 과거의 영화들은 물론 미래에 해당하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의 걸작 영화들의 중요 장면이 삽입됩니다. ‘벤 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레이더스’, ‘트론’,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2’,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됩니다.

영화는 시대를 관통해 인류의 사랑을 받고 회자될 것이라는 낙관론입니다. 하지만 1952년 매니의 시점 장면에 굳이 미래의 영화들을 삽입한 것은 긴 러닝 타임을 감안하면 데이미언 셔젤의 자의식 과잉으로 옥에 티입니다.

배우들 연기도 볼거리

‘바빌론’의 또 다른 볼거리는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의 압도적 연기입니다. 두 배우는 세월과 함께 시시각각 달라지는 희노애락을 몸을 불사르듯 연기합니다. 잭이 엉터리 이탈리아어를 하며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브래드 피트가 엉터리 이탈리아어 연기로 클라이맥스에서 폭소를 유발했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를 의식한 듯합니다.

마피아 보스 제임스로 등장하는 토비 맥과이어는 ‘스파이더맨 3’에서 흑화되었던 연기를 넘어 광기를 뽐냅니다. 작은 체구와 선한 인상을 연기력으로 얼마든지 뒤엎을 수 있음을 입증합니다.

넬리의 무능한 아버지 로버트로는 에릭 로버츠가 맡았습니다. 에릭 로버츠는 젊은 시절 ‘줄리아 로버츠의 오빠’로 불리며 여동생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는데 로버트의 캐릭터와 묘하게 겹칩니다. 잭의 아내 중 한 명이자 연극배우 에스텔은 캐서린 워터스톤이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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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교봉전 – 힘 넘치는 우직한 액션, 미학적으로는 아쉬워 영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교봉 중심의 영화화

견자단이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천룡팔부 교봉전’은 김용의 무협 소설 ‘천룡팔부’에서 3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교봉을 중심으로 영화화했습니다. 송과 거란이 대립하는 가운데 연도 부흥하려는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개방의 방주 교봉(견자단 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송나라 사람이라 여기며 거란족과 싸워왔습니다. 하지만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 데다 출신이 거란족임이 밝혀져 방주 자리에서 축출됩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교봉은, 부모를 찾으려는 여성 아주(진옥기 분)와 함께 누명을 벗기 위해 강호를 유람합니다. 교봉을 음모에 빠뜨린 최종적인 악역은 연을 되살리려는 모용복(오월 분)으로 밝혀집니다.

최근 중화권의 무협 영화가 사실상 사장되면서 마지막 쿵푸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견자단이 직접 연출을 맡아 이채롭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 소설을 130분의 러닝 타임에 욱여넣으니 좋게 말하면 전개가 빠르고 나쁘게 말하면 압축이 과해 설명이 부족합니다.

교봉의 삶은 불행으로 점철되었는데 신파에 함몰되지는 않으나 정서적으로 비극성의 심화는 허전한 수준입니다. 관객의 감정 이입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김용의 원작 소설의 일부만 영화화해 결말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던 1993년 작 ‘의천도룡기’보다는 서사의 완결성은 당연히 낫습니다.

액션 우직함 강조의 명과 암

‘천룡팔부 교룡전’의 최대 장점은 무협 영화에 기대하는 액션이 풍성하다는 점입니다. CG나 와이어를 비롯한 특수 효과를 활용한 액션 장면이 박력이 넘칩니다. 교봉을 비롯한 중요 등장인물들은 손에 쥐는 무기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무공을 사용하며 비행도 자유롭습니다.

아쉬운 것은 액션 연출에서 상황 전달과 힘을 우직하게 강조하다 보니 미학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기능적인 부분에 집중한 결과인지, 아니면 견자단의 연출력 한계 탓인지 과거 걸작 무협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멋스러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교봉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한 의문의 인물은 교봉의 친아버지 소원산으로 결말에서 밝혀집니다. 소원산 역시 견자단이 맡아 부자를 모두 연기했습니다. 과거 소원산 일가를 죽이려 했으며, 모용복의 아버지이기도 한 모용박(여량위 분)도 결말에 등장해 후속편의 여지를 남겨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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