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 테러 - 하드 고어 좀비 액션 코미디

고고 댄서 체리(로즈 맥고완 분)는 자신의 일에 넌덜머리를 내던 중 전 남자친구 레이(프레디 로드리게즈 분)와 제이티(제프 파헤이 분)의 바비큐 하우스에서 만나게 됩니다. 체리는 레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DC-2 가스에 감염된 좀비들에게 한쪽 다리를 잃게 됩니다.

미국에서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와 함께 상영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플래닛 테러’는, ‘데쓰 프루프’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B급 영화를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필름 열화, 사운드 오류, 탈색 등 다양한 효과를 곁들이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직접적으로 좀비라는 언급은 없지만 사실상의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집단 주인공의 액션이나 과장된 하드 고어는 취향이 맞지 않는다면 영화를 끝까지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지저분하며 잔혹합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기면 되었던 ‘데쓰 프루프’와 마찬가지로, ‘플래닛 테러’ 역시 산 사람의 몸을 물어뜯고, 가슴을 열어젖혀 갈비뼈와 내장을 노출하며, 머리를 폭죽처럼 터뜨리는 잔혹한 장면들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기에 도리어 즐겁고 경쾌합니다. 따라서 여름 블록버스터의 틈바구니에 묻혀 조용히 개봉되었다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양성애자 여성이 벌이는 부부싸움이나 바비큐 소스 비법에 관한 천착은 내러티브와는 무관하지만 생뚱맞고 유치하기에 B급 정서를 추구한 영화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플래닛 테러’보다 앞서 제시되는 가짜 예고편 ‘마세티’ 역시 황당하면서도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모녀를 동시에 품에 안는 영웅 마세티는 대니 트레조가 분했는데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전작 ‘스파이 키드’에도 등장했던 캐릭터입니다.

코미디와 좀비물에 액션을 뒤섞었기에 ‘플래닛 테러’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전작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후속편에 가깝습니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데쓰 프루프’의 감독이자,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절친한 친구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출연은 그가 관객에게 품도록 만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는데, 고전 여배우를 끌어다 수다를 떨더니 결국 여자를 밝히다 비참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최후를 맞이합니다. 오프닝 크레딧에는 이름이 없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상당한 비중으로 출연하며, 조쉬 브롤린과 마이클 빈 같은 중견 배우들의 진지하게 망가지는 연기도 흥밋거리입니다.

하지만 가장 빛나는 것은 역시 주인공 체리 역의 로즈 맥고완입니다. ‘데쓰 프루프’에서도 팸으로 출연했던 그녀는 오프닝부터 범상치 않은 춤으로 시선을 끌더니 결국 왼쪽 다리에 기관총을 끌어다 붙인 기발한 기믹으로 출연해 좀비들을 학살합니다. 이처럼 통쾌한 장면을 종반에나 가야 볼 수 있다는 점이 감질 날 정도입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소재에 대해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크래쉬’에서 볼 수 있었던 철학적 고뇌는 말끔히 무시한 채, 만화적인 폭력이 선사할 수 있는 유머와 쾌락에 집중합니다.

씬 시티 - 만화와 느와르의 혼성 잡종

by 디제 | 2008/07/04 10:01 | 영화 | 트랙백 | 덧글(2)

한국 프로야구 공공의 적, KBO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기 구단 롯데의 분전에 따른 매진 사례와 이에 자극 받은 타 팀 관중들의 야구장 행렬로 13년 만에 500만 관중 돌파의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히어로즈의 납임금 미납에 관련된 KBO(한국 야구 위원회)와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협상 결렬 사태를 지켜보면 500만 관중은커녕, 하루아침에 한국프로야구가 18년 전 7개 구단 체제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최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최고 인기 스포츠에서, 1주일마다 두 팀이 돌아가며 경기 없이 쉬며, 많은 선수들이 실업자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벼랑 끝에 선 것입니다.

올해 프로야구 인기의 회복이 열심히 뛰는 선수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참한 불황의 늪에 빠진 한국 영화계와 부진을 면치 못하는 해외파 선수들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이 한국 프로야구로 쏠리게 되며 반사적 이익을 얻은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는 최근 몇 년 간 갈지자 행보를 지속해왔습니다. 야구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없는 전 정권의 실세 신상우 씨가 총재로 낙하산 취임한 이후, 작년부터 불거진 현대 유니콘스 인수 사태는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야구팬들을 근심 서리게 하고 있습니다. 현대 인수 과정에서 여지없이 노출한 KBO의 난맥상은 협상의 초보적인 기술조차 숙지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농협, STX, KT가 현대 인수 기업으로 물망에 올랐지만 비밀을 지켜야 하는 협상 중간 과정에서 신상우 총재가 협상 내용을 누설하여 모두 수포로 돌아간 바 있습니다. 결국 현대는 돌고 돌아 센테니얼에 인수되고, 우리 담배가 스폰서가 되어 간신히 올 시즌 개막 직전 리그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정체불명의 회사 센테니얼이 기한을 넘기면서까지 납입금을 납부하지 않아 페넌트 레이스 파행이라는 파국에 접어들지 모른다는 불안을 야기했습니다. 가입금조차 제대로 납부할 수 없는 센테니얼보다 자격 미달의 기업을 리그에 애당초 참여시킨 KBO의 잘못이 더욱 큽니다.

센테니얼 사태뿐만 아닙니다. 심판들의 잦은 오심은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홈런이 파울이 되고, 아웃이 세이프가 되는 심판들의 잦은 오심이 작년부터 불거진, 둘로 나뉜 심판 파벌 간의 극심한 대립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심판들이 판정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파벌과 연줄에 의존해 생존을 유지하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심판마다, 혹은 한 명의 심판이라도 상대 팀이나 선수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마구 달라지는 문제는 오히려 지엽적인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윤길현 사태’ 또한 그렇습니다. 상대팀 선수이자 선배에게 빈볼을 던지고도 욕설을 퍼부으며 환호한 SK 윤길현에게 아무런 징계도 가하지 않고, SK 구단에 처리를 떠넘기는 KBO의 처사는 명명백백한 직무유기입니다. KBO는 윤길현에게 징계를 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경기 중 심판이 퇴장 등의 제재를 가하지 않았으니 상벌 위원회에 회부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이는 매우 설득력이 빈약하며, 동시에 당일 경기의 심판 역시 직무를 방기했음이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전부터 KBO는 빈볼을 던지는 투수에 대해 출장정지 등의 중징계를 내리지 않고 벌금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해왔기에 윤길현 사건의 불씨를 제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차후 KBO의 솜방망이 징계가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윤길현 사태가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다음 달 개최되는 베이징 올림픽 본선 예비 엔트리 문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대회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기술위원회의도 없이 46명의 엔트리를 다시 60명으로 늘렸는데, 부랴부랴 급조한 60명의 엔트리를 보면 극도로 부진해 소속팀에서 2군으로 내려간 몇몇 선수들이 눈에 띄는 반면,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선수들이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대회 요강도 모른 채 탁상행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KBO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는 또 다른 예입니다. 과연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선발되는 대표팀이, 국민적 관심사이자 선수 본인들의 병역 문제가 걸린 메달 획득이 가능할 최상의 전력으로 구성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유례없는 인기 몰이로 인해 KBO는 심각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아마도 KBO는 자신들의 공로 덕분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회복되었다고 판단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흥행은커녕 도리어 찬물을 끼얹고 기존의 판을 무너뜨릴 우려조차 제대로 불식시키지 못하는 KBO는 한국 프로야구 공공의 적에 불과합니다. 만일 KBO가 이처럼 무능과 난맥을 반복한다면 꾸준히 야구장을 찾는 팬들을 내쫓고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을 모욕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계의 공멸을 자초할 지도 모릅니다. 부디 KBO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야구 흥행은 KBO의 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일성 사무총장의 유창한 언변처럼 KBO의 행정이 매끄럽게 구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by 디제 | 2008/07/03 09:09 | 야구 | 트랙백(1) | 덧글(14)

오늘의 책 지름

월말/월초에 돌아오는 책 지름입니다.

Newton 7월호. 특집 '우주론'은 지난 호까지의 특집과 달리 양적으로 매우 풍부해져 사실상 책 한권 전부를 할애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Newton Highlight' 수준에 맞먹습니다.

경영과 야구를 접목시킨 '머니볼'. 국내에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좋은 야구 서적이 많은데 국내에 야구붐이 일고 있으니 번역 출간이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by 디제 | 2008/07/02 13:09 |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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